<center><A href='http://www.happy.co.kr/happy2005/happy_flash/flash_view.php?reg_no=11266' target=_blank>[감동플래쉬] 사랑의 찐빵가게. - 클릭하시면 새창으로 열립니다^^</A>
5분 훈화자료
다음 이야기들은 지동이에서 그 동안 틈틈이 모아온 것입니다. 책으로 나온 것이 아닌 이야기들(통신, 떠도는 이야기?), 그리고 신문기사도 더러 있습니다. 그래서 미처 출처를 밝히지 못했습니다. 재미있거나, 생각할 거리를 주는 것, 또 가슴이 따뜻해지는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를 덧붙이거나 덜어서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선생님은 울고 계셨다
그 때 그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곤 한다. 그 때 내 나이 열두 살, 가난한 집안 살림 때문이기도 했지만 내가 살았던 임자도에는 그 때까지 학교란 게 없어 늦게 초등학교에 입학한지라, 항상 반 아이들을 함부로 대하는 게 버릇이 되어 있었다.
여느 시골도 마찬가지였겠지만 그 때는 참 욕을 많이 했다. 좋아도 욕, 싫어도 욕, 욕이 아니면 대화가 안 될 정도였다. 욕도 그냥 욕이 아니라 지금 생각하면 온갖 상스러운 소리가 총동원된 그런 욕이었다.
이런 우리들 모습에 선생님은 때로는 꾸중을 하셨고 때로는 벌을 주셨다. 또 어떤 때는 눈을 감으라고 한 뒤 여러 선현의 가르침을 주기도 하셨지만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월요일 조례 때, 선생님은 조그만 종이를 가져와서 우리에게 10장씩 나누어주셨다. 그 종이에는 선생님의 도장이 꾹꾹 찍혀 있었다. ‘욕표’였다. 만약 친구가 욕을 하면 즉시 빼앗아서 보관하라는 것이다. 그래 토요일에 검사를 해서 다 빼앗긴 사람은 홀랑 벗겨 운동장을 돌게 하고 남에게 욕표를 한 장도 빼앗기지 않은 사람은 공책 한 권을 상으로 주신다는 것이었다.
우리들의 귀가 번쩍 트였다. 그 어려운 시절 공책 한 권은 기막힌 상품이 아닐 수 없었다. 비료 푸대를 잘라서 공책으로 쓰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러나 입을 봉하리라 몇 번을 다짐해도 튀어나오는 욕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드디어 토요일 아침이 되었다. 선생님은 책상 위에 욕표를 다 내놓으라고 하시더니 1분단부터 검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욕표가 한 장도 없는 사람은 전체에서 나밖에 없었다.
선생님은 무서운 표정으로 교무실로 따라오라고 하셨다. 아니 교무실이라니, 그 때 교무실에 가는 것은 지옥 가는 것보다 더 무서운 시절이었다. 아이들은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뒤따라가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교무실 바닥에 무릎을 꿇리고서 선생님은 물었다. “홀랑 벗고 운동장을 돌 테냐, 아니면 열 대를 맞을 테냐?” 아니 창피하게 어찌 이 나이 돼가지고 운동장을 돈단 말인가? 당연히 매를 맞겠다고 했다.
선생님은 긴 매를 가져와서 내 엉덩이를 까 내리더니 한 대, 한 대 때리시는 것이었다.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세 대째, 드디어 나는 고꾸라지며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 그런데 선생님은 울고 계셨다.
“태기야, 내가 너를 얼마나 믿었는데…….”
선생님은 굵은 눈물을 뚝뚝 떨구면서 나를 보고 계셨다.
나는 갑자기 뒤통수를 맞은 충격에 한동안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다시 뒤돌아 서서 매를 맞기 시작했다. 조금도 아프지 않았다. 그렇지만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나왔다.
“태기야, 내가 너를 얼마나 믿었는데…….”
하는 선생님의 눈물 섞인 음성만이 나를 강력히 사로잡고 있었다.
이제 40년이 훨씬 지났는데도 나는 그 때 그 선생님의 음성이 귀에 쟁쟁하다. 살아오면서 닥친 그 수많은 어려움을 내가이만큼 이나마 헤쳐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 때마다 선생님이 찾아 오셔서 들려주신 이 말씀 때문이다.
“태기야, 내가 너를 얼마나 믿었는데…….”
아, 선생님!
내일은 공짜
어느 이발소에 ‘내일은 공짜로 이발해 드립니다’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보는 사람마다 공짜 이발을 하려고 벼르고 있다가 다음날 가서 이발을 했다. 이발을 하고 감사하다고 인사한 후 나오려니까,
“네, 손님. 사천원만 내시면 됩니다.”
라고 하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손님이
“아니 이발을 공짜로 해준다고 해서 들어왔는데요?”
“어디에 공짜라고 되어 있습니까?”
둘은 밖에 나가 간판을 보았다.
“여기 공짜라고 되어있지 않습니까?”
“어디 공짜라고 되어 있습니까? 내일이면 공짜로 해드린다고 했죠.”
“나는 어제 이 간판을 봤단 말이에요.”
“그러나 이 간판은 여전히 내일을 가리키고 있지 않습니까?”
“그럼 언제 오면 공짜입니까?”
“내일이오. 오늘은 항상 돈을 받습니다.”
“그러면 영원한 내일이니 기대할 수 없군요.”
“내일은 당신의 날도, 나의 날도 아닙니다. 단지 오늘만이, 지금 이 순간만이 나의 것이요, 당신의 것일 뿐이죠.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을 가장 귀하게 여기고 이 순간에 충실해야 되죠.”
두 야바위꾼
영국인인 잭슨과 루이스는 2차 대전이 끝나자 서로 동업하기로 하고 장사를 시작했다. 그 둘은 사람들을 속였다. 더 많은 이익을 내기 위해 백동촛대를 은이라고 속였고 구리시계를 황금시계로 사람들에게 팔았다. 처음엔 짭짤한 수익을 올렸으나 그 일이 몇 번 반복되자 시장에는 잭슨과 루이스가 사기꾼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이보게, 이제 아무도 우리를 믿지 않게 되었네, 어쩌지?”
잭슨이 앞으로의 일을 걱정하자 루이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오늘부터 정직하게 장사를 해보자구, 손님들이 우리를 완벽하게 믿을 때까지만 말일세. 한 10년쯤이면 될까. 그래서 우리를 사람들이 완전히 믿을 때쯤 크게 한탕 해보자구.”
그 길로 잭슨과 루이스는 헤어져서 각자 정직하게 장사를 하기 시작했다. 한 1년쯤 지난 어느 날 잭슨이 루이스를 찾아왔다.
“이보게, 어떤가? 아직도 사람들이 날 믿으려 하지 않아. 난 망하기 직전이라구.”
“잭슨, 나도 마찬가지야. 그러나 어쩌겠나. 우리가 멋지게 한탕 하기 위해 약속한 날까지 정직하게 장사를 해보자구.”
루이스의 격려를 들은 잭슨은 굳은 결심으로 돌아가 정직한 장사를 했다. 그리고 약속한 10년째 되는 날, 그들은 다시 만났다.
“루이스, 이제 사람들은 완벽하게 날 믿게 되었어.”
“그거 잘 됐군. 나 역시 장사가 아주 잘된다네.”
그리고 그들은 한동안 서로 머뭇거리다가 겨우 잭슨이 말을 꺼냈다.
“오늘은 우리가 한탕 크게 하자고 약속한 날이지. 그런데, 실은 나 앞으로도 계속 정직하게 일하려네. 남을 속이지 않으니 장사가 속임수를 쓸 때보다 더 잘 돼. 그걸 자네에게 말하려고 나왔다네.”
그러자 루이스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괜찮아 친구, 나도 오늘 그걸 자네에게 말하려고 나온 걸세. 하하하.”
사랑하지만 마음이 아플 거야
큰아이가 잘못을 저지른 동생에게 이렇게 타이르고 있었다.
“넌 착한 일을 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아빠가 널 사랑하지 않으실 거야.”
이 말을 들은 아빠는 두 아이를 불러서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얘야, 그게 꼭 그렇지만도 않단다.”
“하지만 우리가 나쁜 짓을 한다면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실 것 아니겠어요?”
아이는 알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아니야. 좋은 일을 하거나 나쁜 일을 하거나 이 아빠는 너희들을 항상 사랑한단다. 그렇지만 그 사랑에는 차이가 있겠지. 네가 착한 일을 한다면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사랑할 것이고, 만일 나쁜 일을 한다면 사랑하지만 마음이 아플 거야.”
아빠는 이렇게 설명하였다.
이제 다시 태어난 기분으로
옛날에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아들 내외가 있었다. 늙은 어머니가 앓아 누워 병구완을 하느라 살림이 다 거덜나고 마지막 남은 황소 한 마리를 팔기로 하였다.
아들은 황소 판 돈을 가지고 산을 넘다 그만 강도를 만났다. 어머니 약값으로 쓰려고 판 황소 값이니 제발 그냥 보내달라고 애원을 하였지만, 강도는 아랑곳하지 않고 칼을 쳐들었다.
이 때 마침 장꾼을 보호하고 강도를 잡으러 다니는 포졸들이 다가왔다.
“여봐라, 이 깊은 산골에서 무얼 하고 있느냐?”
황소 값을 빼앗기게 된 사람이 포졸에게 강도를 고발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그는 강도에게 칼을 치우라고 포졸 몰래 소곤거린 후에 그 강도를 감쌌다.
“예, 우리는 장에 갔다가 집에 가는 친구들인데, 내가 전에 돈을 빌어온 것이 있어 이 친구는 지금 주라고 하고, 나는 어머니 건강 되찾으신 후에 주겠다고 지금 승강이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자 포졸은 곧 지나갔고, 강도는 그 사람 앞에 무릎을 꿇고 빌었다.
“제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어머니 약값을 위해 그토록 아끼는 황소를 판 돈을 빼앗으려는 놈을 이렇게 살려주시다니, 한마디면 죽일 수도 있었는데 이렇게 살려주시다니…….”
강도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꼈다.
“사람에게 한번 실수란 있는 것이 아니겠소? 마음을 돌렸다니 이제 뭐가 걱정이오? 자, 어서 눈물을 거두십시오.”
자기를 일으켜 세우는 손을 부여잡고 강도는 울면서 다짐했다.
“그 동안 모든 사람을 미워하고 멋대로 살았던 저는 세상 사람들이 다 저를 미워하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단 한번도 사람 취급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누군지도 잘 모르는 저를 이렇게 살려주시다니, 이제 다시 태어난 기분으로 열심히 살겠습니다.”
먼저 고놈을 사 먹었어야 하는 건데
나그네 한 사람이 온종일 길을 걷다보니 몹시 배가 고팠다. 그래서 호떡 장수에게서 호떡을 한 개 사먹었다. 그런데 먹고보니 간에 기별도 간 것 같지 않아 한 개 더 사먹었지만 역시 먹은 둥 만 둥 하였다. 그래서 또 한 개를 더 사먹었지만 여전히 시장이 가시지 않았다.
이렇게 한 개 또 한 개, 그리하여 모두 여섯 개를 먹었지만 아직도 배가 부르지 않았다. 그래서 또 한 개를 사먹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이번 호떡은 반 쪽만 먹어도 벌써 배가 불렀다.
나그네는 몹시 후회가 되어 제 귀쌈을 후려갈기면서 자책하는 것이었다.
“젠장! 이렇게 아낄 줄 모르고 어떻게 살아나간담! 먼저 사먹은 호떡 여섯 개 값은 헛되이 날려버렸어! 반 개만 먹어도 배부를 줄 알았더라면 먼저 고놈을 사먹었어야 했을 걸…….”
남쪽 땅에 가서 강물을 끌어온들
장자는 집이 아주 가난했다. 언젠가 집에 곡식이 떨어져 먹을 것이 없자, 감하후라는 사람을 찾아가 부탁했다.
“먹을 것이 없으니, 곡식을 조금만 빌려주십시오.”
감하후는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내가 머지않아 백성들에게 세금을 거둬들일 텐데, 그 때 선생께 3백냥쯤 빌려드리지요. 그만하면 되겠습니까?”
이 말에 장자는 불끈 성이 난 얼굴로 말했다.
“내가 어제 이리로 오는데, 마른 땅 위에서 붕어 한 마리가 팔딱이며 나를 부르더군요. 내가 붕어에게 물었습니다. ‘붕어야, 무슨 일로 그러느냐?’ 그랬더니 붕어가 대답하기를, ‘나는 본디 동해 바다에 사는데 잘못하여 이곳으로 나왔습니다. 물이 없어 곧 죽을 것 같으니, 당신이 물을 조금만 준다면 나를 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하더군요. 그래서 내가 대답했습니다. ‘좋다. 내가 지금 남쪽 땅으로 가는 길인데, 그 곳에 가서 강물을 떠다가 돌아오는 길에 너에게 주겠다. 그럼 되겠느냐?’ 그랬더니 붕어는 벌컥 화를 내며 ‘나는 지금 당장 한 그릇의 물이 필요하오. 당신이 남쪽 땅에 가서 강물을 끌어온들, 내가 이미 죽은 뒤에야 무슨 소용이 있겠소!’ 하더군요.”
이 말을 듣고 감하후는 그만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지 못했다.
볼품없는 이 작은 씨앗이
어느 무더운 날이었다. 농부는 마루에 너절하게 널려 있는 씨앗을 보았다. 그것도 아주 작은 것이었다.
“이게 뭐지? 누가 이걸 마루에다 흘렸어? 마루가 이렇게 지저분해서야……. 에이, 쓸어버려야지.”
그리고는 비를 가져와서 그 씨앗을 마당으로 쓸어버렸다. 씨앗은 바람에 날려 밭에 떨어졌다.
농부의 마당에는 채송화, 봉숭아, 나팔꽃들이 저마다 예쁜 얼굴을 자랑하고 있었다. 또 그 옆에는 호박과 수세미도 있고, 마당 한 편에는 조그만 감나무도 한 그루 서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도 작은 씨앗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다들 이 씨앗보다 훨씬 크고 예쁘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지금은 작지만, 난 앞으로 큰 나무가 될 수 있을 거야.”
땅에 떨어진 작은 씨앗은 이렇게 다짐하며 흙 속에서 오래 참고 있었다.
한 해가 지났다. 농부네 마당은 작년과 같았다. 호박도 감나무도 꽃들도 여전히 그 자리에 피어 있었다. 딱 한 가지가 바뀐 것이 있다면 마당 한 구석에 작은 싹이 돋아난 것이었다. 그게 뭘까?
몇 년이 지났다. 그 작은 싹은 몸통도 굵고 가지도 무성하고 키도 무척 컸다.
‘이게 뭘까? 오라, 그 작은 씨앗이 마당에서 싹이 트고 나무가 되었구나.’
그래서 농부는 무더운 여름날 이 나무 그늘에 의자를 만들어서 쉬기도 하고, 책도 읽었다. 또 낮잠도 즐겼다.
아이들이 매일같이 놀러와서 그네도 타고 책도 읽고 술래잡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가지 위에는 큰 새들이 날아와 둥지를 틀고 보금자리를 꾸밀 수 있었다.
이 큰 나무가 그 볼품없이 작은 씨앗이었다고 아무도 생각할 수 없었다.
못 생긴 것들이 있어서 아름다운 세상
나는 미운 돌멩이랍니다. 돌멩이들 가운데도 모양이 예쁘고 색깔이 고운 돌멩이가 있다지만, 나는 아무런 특징도 없고, 색깔도 없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고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흔해빠진 돌멩이랍니다.
돌멩이로 태어나 모양이 예쁜들 무엇하겠느냐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이리저리 굴러다니다가 지금 자리잡고 있는 이 개울에서만 해도, 벌써 여러 돌멩이들이 놀러나온 사람들의 눈에 띄어 그들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거나 배낭에 실려 먼 곳으로 갔습니다.
“야, 이 돌멩이 좀 봐. 아기사슴같이 생겼어!”
착하게 생긴 계집아이가 이렇게 소리지르며 내 옆에 있던 돌멩이를 집어드는 것을 보았을 때, 나의 가슴은 저리도록 아팠습니다.
왜 사람들은 예쁘고 고운 돌멩이만 좋아할까요? 생각하면 야속하기조차 합니다만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고작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못 생긴 자신을 서러워하면서 이른 새벽이나 늦은 밤에 남모르게 눈물짓는 것뿐입니다. 돌멩이가 어떻게 우느냐고요? 궁금하신 분은 이른 새벽, 아직 해가 떠오르기 전에 안개 낀 개울가로 나와 보십시오.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못하여 외롭고 슬픈 돌멩이들마다 이슬방울처럼 맺혀있는 차가운 눈물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왜 사람들은 예쁜 돌멩이만 좋아할까요?”
어느 날 나는 작은 물새의 깃털을 입에 물고 내 위를 스쳐 가는 하늬바람에게 물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돌멩이로 자기 방을 아름답게 꾸미지.”
하늬바람은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내 곁을 맴돌면서 대답해주었습니다.
‘아, 그런 사람의 방안에서 한 자리 차지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무룩해진 나에게 하늬바람이 물었습니다.
“너도 사람들이 데리고 가줬으면 좋겠지?”
하늬바람이 내 마음속을 너무나도 빤히 들여다보았으므로 나는 더욱더 슬퍼졌습니다. 그러나 하늬바람은 빙글빙글 웃는 얼굴로 나와 다른 못생긴 돌멩이들 둘레를 돌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슬퍼하지 말아라. 이 못생긴 돌멩이들아. 사람들이 가지고 간 돌멩이는 겨우 한 칸 방을 꾸미고 있지만 너희는 이 지구를 아름답게 꾸미고 있지 않느냐? 하하하…… 하느님이 지으신 이 세상은 너희같이 못생긴 것들이 있어서 더욱 아름다운 것이란다!”
남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먼 옛날 깊은 산 속 통나무 집에 노인 한 분이 살고 있었다. 하얀 수염이 무릎까지 내려온 이 노인은 세상의 온갖 지혜를 다 지닌 분이었다. 그래서 노인이 어쩌다 마을에 내려오면 온 마을 사람들이 그의 말을 들으려고 몰려왔다.
어느 날 노인은 마을 사람들에게 행복의 비밀을 가르쳐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 비밀을 들을 만한 가치가 있는 한 사람에게만 말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의논한 끝에 아름다움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값진 것이라 생각하고 마을에서 가장 예쁜 소녀를 보내기로 했다. 그러나 노인은 그 소녀를 돌려보냈다.
사람들은 다시 의논한 끝에 가장 돈이 많은 사람을 보내기로 했다.
풍부한 재산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노인은 입을 열지 않았다.
노인은 슬펐다. 고작 그런 생각밖에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실망을 했으니까. 그런데 마침 작은 새를 가슴에 안고 울고 서있는 소년을 만났다. 노인이 다가가서 물으니 다친 새가 불쌍해서 울고 있다는 것이었다.
노인은 기뻤다. 이제야 행복의 비밀을 말해 줄 사람을 만난 것이었다.
“얘야, 지금 네가 흘리고 있는 눈물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것이란다. 남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결코 행복을 맛볼 수 없거든.”
노력만 하면 안될 것도 없지요
옛날 어떤 나그네가 부지런히 길을 가고 있길래, 한 노인이 물어보았다.
“여보시오. 당신은 지금 어딜 그렇게 바쁘게 가는 거요?”
그 나그네는 한양에 간다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가 가는 길은 한양과 반대의 길인지라, 노인이 딱하다는 듯이 말했다.
“한양은 북쪽으로 가야지, 남쪽으로 가면 어떻게 합니까?”
그러자 나그네가 말했다.
“염려 말아요. 나는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람이니 노력만 하면 안 될 것도 없지요.”
다만 이 작은 집이라도
옛날 그리스에 소크라테스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매우 지혜롭고 훌륭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어서, 젊은 사람들이 그의 지혜를 배우려고 몰려들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따라다니며 귀찮게 해도 그런 일을 싫어한다거나 쫓아내는 일이 없었다. 오히려 그가 알고 있는 많은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그들에게 들려주었다.
어느 해 여름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손으로 직접 그의 집을 짓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는 자기가 살려는 그 집을 너무나 작게 짓고 있었다. 이웃 사람들은 그가 그렇게 작은 집을 짓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이렇게 물었다
“당신 같은 훌륭한 지식을 가진 분이 이런 작은 상자 같은 집을 지으시는 건 도대체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
질문은 받은 소크라테스는 아주 덤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사실 별 다른 이유는 없소. 다만 이 작은 집이라도 마음이 진실한 친구들로 가득 채울 수만 있다면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했소.”
부인들의 지혜
12세기 독일 황제의 자리에 오른 콘라트 3세에게는 고민이 있었다. 그가 황제가 된 뒤에 제후 중의 하나인 바바리아가 심한 반대를 표하고 나선 것이다. 콘라트는 바바리아의 복종을 구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게르프 성으로 쳐들어갔다. 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고립되어 있던 게르프 성에서 백기가 올라왔다. 바바리아는 항복한다는 뜻을 비추었지만 콘라트는 나중을 위하여 순순히 항복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대신 다음과 같은 조건을 제시했다.
‘아직 싸움이 끝난 것은 아니다. 성 안의 모든 남자는 이제 우리의 포로다. 그러나 여자들은 손에 들 수 있을 만큼의 짐을 들고 성을 나가도 좋다.’
얼마 뒤 굳게 닫혔던 성문이 스르르 열렸다. 그러자 여자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콘라트는 여자들의 걸음이 더딘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일부러 말을 타고 성문 근처로 다가섰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콘라트는 너무 놀라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성문 밖으로 뛰어나오는 여자들의 등엔 모두 남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업혀 있었다. 즉 가지고 나올 짐 대신에 남편을 업은 것이다. 많은 여자들이 커다란 남자를 업고 뒤뚱거리며 뛰는 모습은 우습기까지 했다. 그러나 농부의 아내뿐만 아니라 제후인 바바리아 부인까지 남편 바바리아를 업고 나오는 모습이 눈에 띠자 콘라트는 더 이상 웃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콘라트는 부인들의 지혜로운 사랑에 크게 감명을 받아 성안의 모든 남자를 풀어주었다.
소중한 편지 작은 가르침에서
일기를 쓰다가 보면 하루에 경험한 일 중에서 짤막하면서도 지금까지 이 세상에서 누구도 느끼지 못했던 좋은 한 구절을 쓸 수가 있다. 마치 번개처럼 번쩍이며 스쳐가는 지혜를 말이다. 이런 지혜는 두 번 다시 떠오르지 않는데, 일기를 쓴다면 이런 지혜를 저장해둘 수도 있고, 지혜들이 쌓이면 먼 뒷날에 나열해도 위대한 문학작품이 되지 않을까? 주부가 매일 가계부를 적는 것도 일기를 적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생각하며, 달력에 간단한 메모를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매일 기록하기는 귀찮을 것이나 이것을 해내는 것이 삶의 제일 가는 지혜일 것이다. 그러나 우둔한 자는 이 지혜를 지나쳐 버린다. 마치 돈을 헛되이 써버리듯이 말이다.
여자의 뼈
한 성인이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갈 때였다. 하루는 사람들의 뼈가 산더미처럼 쌓인 곳을 지나게 되었다. 갑작스런 재난이 닥쳐, 많은 사람들이 죽어간 곳이었던가보다. 살아 있을 때 부귀 영화를 누리던 사람, 고생하던 사람, 예쁜 사람, 미운 사람 등 갖가지 사람의 뼈가 모인 셈이다.
누군가가 말했다.
“삶이란 참 무상한 거로구나. 죽으면 모두 같은 뼈다귀만이 남는데…….”
그 때 성인은 제자들에게 물었다.
“너희 중 누가 여기서 여자의 뼈를 가려낼 수 있겠느냐?”
모두 얼굴만 마주 보았다. 성인은 뼈 하나를 쳐들고 말했다.
“자, 여기 이 뼈는 여자의 것이다.”
“선생님, 어찌 그것을 아십니까?”
“여자의 삶을 생각해 보아라. 어려서는 여자이기 때문에 남자보다 늘 못한 대접을 받는다. 결혼하여 아기를 가지면, 온몸의 양분을 아기에게 주게 된다. 아기를 낳을 땐 몸 속의 많은 피들을 아기를 위해 흘린다. 젖을 먹이며 또한 자기 몸의 일부를 주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여자의 살과 피뿐 아니라 뼈 속에 든 양분도 남아 있지 못한다. 쓰디 쓴 여자의 삶은 그 뼈를 이토록 가볍고 또 검게 만들지 않느냐?”
제자들은 스승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기 어머니의 고난에 찬 삶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장기 기증
KBS 2TV에서 방영하는 「남자는 외로워」, 「한쪽 눈을 감아요」 등에 출연 중인 탤런트 석광렬 씨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고 입원 중, 7일만인 8월 1일 뇌사상태가 되어 자신의 장기를 기증하고 다른 세상으로 떠났다. 석 씨의 장기는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7명의 환자에게 새 생명을 넣어주었다.
석 씨는 7월 25일 새벽, 촬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차가 전복되어 사경을 헤매었다. 이런 상황에서 평소 장기 기증 의사를 밝혔던 석 씨의 뜻에 따라 석 씨 가족들이 동의, 석 씨의 심장과 간을 곧바로 생명이 위태로운 최모(21․여) 씨, 김모(47․여) 씨에게 이식되었다.
그러나 가족들이 장기 이식 결심을 하기까지는 뼈를 깎는 아픔이 있었다. 가족들은 의사로부터 석 씨가 살아날 가능성이 1%도 안된다는 통고를 받았지만 외아들의 소생에 대한 미련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7일간을 고통과 눈물 속에서 보내었던 것이다.
석 씨의 장기 기증에는 아버지의 결심이 컸다. 장기 이식 동의서에 서명을 한 것이다.
아버지 석가화(57) 씨,
“광렬이는 평소에 장기 기증의 뜻을 자주 밝혔습니다. 죽어서도 남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을 따르겠다고 했고. 비록 육신의 자식은 잃었지만 새로 7명의 생명을 살렸으니······. 가슴이 터질 것 같습니다. 어떻게 키운 자식인데······. 그러나 광렬이의 못 다 편 꿈을 그들이 이뤄줄 것으로 믿습니다.”
그 보물
스승이 마을 어귀에 이르러 정자나무 아래서 하룻밤을 새려는데, 마을 사람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보석! 보석! 그 보석을 제게 주십시오!”
“그 보석이라뇨?”
“간밤에 신이 꿈에 나타나, 해거름이 되면 동구 밖엘 가보라시더군요. 사람이 한 분 보일 것이고, 그 분이 값진 보석을 하나 줄 터인데, 그 보석으로 영원히 부자가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스승은 보따리를 뒤지더니 보석을 하나 꺼냈다.
“아마 이것 말씀이셨겠지요. 며칠 전에 숲 속 오솔길에서 주웠는데, 갖고 싶다면 가져도 좋소.”
선뜻 건네주는 것이었다.
마을 사람은 보석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람 머리만큼이나 큰 금강석이 아닌가! 금강석 가운데서도 아마 세상에서 제일 큰 것 같았다.
금강석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 그는 그 날 밤 내내 이불 속에서 이리뒤척 저리뒤척 한잠도 이루지 못했다. 이튿날 새벽 첫닭 우는 소리가 들리자, 그는 달려가 스승을 깨웠다.
“스승님, 이 금강석을 그처럼 서슴없이 내어줄 수 있게 하는 그 보물을 주십시오.”
우정의 문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지.
내 친구 중에 산골로 들어가 박혀사는 한 사람이 있었는데, 어느 해 겨울이던가, 밤새 눈이 소복이 쌓이던 날 새벽이었어. 뜰 앞에 눈이 하얗게 내려 있는 걸 보니 괜히 그 친구가 간절하게 생각나더군. 그래서 식구들 모르게 혼자 집을 빠져 나와 새벽 눈길을 밟으며 그 친구를 찾아갔어.
집을 빠져 나와 새벽녘 눈길을 걷고 있는 자신이 아무래도 아직 제 정신이 아닌 꿈 속의 일처럼만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무슨 보이지 않는 힘에라도 이끌려 가고 있었다고 할까. 하여튼 아직도 새벽 어스름이 걷히지 않은 하얀 눈길이 그렇게 고와 보일 수가 없더군. 숲 속은 더욱 선경이었어.
난 마침내 친구의 집 문 앞에 이르러 벗을 불렀지. 하지만 친구는 새벽잠에 묻혔는지 대꾸가 없더군. 몇 차례나 문을 두드리고 소리를 쳐봐도 전혀 인기척이 없었어. 그래서 난 할 수 없이 발길을 돌리려던 참이었어.
그런데 그 때 내 등 뒤에서 어떤 느낌이 왔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거기에 벗이 우뚝 서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지 뭐야. 그래, 이 사람, 왜 부르는 소리에 응답이 없고 거기 그러고서 있느냐니까, 그 친구 대답이 이러질 않겠나? 새벽 눈길을 밟고 산골까지 찾아 온 소리를 들으니 머리 속에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 있었대. 내 어찌 이 앞 뜰에 쌓인 눈 위에 첫 발자국을 낼 수 있으랴, 벗에게 이 발자국이 나지 않은 하얀 눈 위로 내 집에 곱게 걸어 들게 하리라…….
그래, 그 친구는 앞 마당에 쌓인 눈 위에 발자국을 내지 않기 위하여 뒷문을 열고 뒤꼍을 돌아서 문간 앞까지 나를 맞으러 나왔던 거야. 그리고 난 그 친구의 고마운 권유에 따라 발자국이 나지 않은 그 고운 눈 위를 걸어서 집으로 들어갔지.
낮과 밤
어느 대학교 물리학 시간에 물리학 교수 한 분이 학생들에게 엉뚱한 질문을 하였다.
“낮이 끝나고 밤이 시작되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누구 대답할 수 있는 학생은 일어나 말해 보시오.”
물리학 교수의 이 질문에 학생들은 저마다 목소리를 줄이며 키득키득 웃었다. 해가 뜨면 낮이고 달이 뜨면 밤이라는 사실쯤은 초등학생들도 다 아는 것인데 새삼스레 대학 물리학 시간에 이런 질문은 하는 이유는, 날씨가 너무 더워 지루한 강의 시간을 좀 참신하게 하기 위해서, 물리학 교수가 재치 문답 같은 것을 요구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리학 교수의 이런 어리석은 질문에 가장 어리석은 대답을 할 자신이 있다고 생각한 한 학생이 일어나 이렇게 답변했다.
“네, 낮과 밤의 구별은 멀리 떨어진 동물이 개인지 고양이인지 구별할 수 있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을 들은 교실 안 학생들은 모두들 허리를 잡고 웃었다.
어떤 학생은, 멀리서 걸어오는 교수가 대머리 물리학 교순지, 아니면 대머리 화학 교순지 분간할 수 있을 때라고 큰소리로 말하기도 했다.
교실 안은 한순간 폭소로 뒤덮였다.
이제까지 가만히 학생들의 답변만 듣고 있던 물리학 교수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무래도 나의 질문에 올바른 대답을 할 학생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하는 수 없이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말하겠습니다.”
“여러분, 각자 상대방의 얼굴을 보십시오.”
학생들은 어리둥절해서 교수의 지시대로 서로 상대방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앞 사람의 얼굴이 낯선 얼굴이 아니라 친밀한 나의 형제, 자매라고 생각할 때가 바로 낮입니다. 여러분들이 결코 옆 사람의 얼굴이 형제, 자매로 볼 수 없다면 그 사람의 시간은 항상 밤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지금 여러분의 시간은 낮인가요 밤인가요?”
물리학 교수의 답변을 듣고 있던 학생들은 저마다 약간 놀란 듯한 표정으로 옆 사람의 얼굴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첫마음에서
1월 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를 하면서 먹은 첫마음으로 1년을 산다면,
학교에 입학하여 새 책을 앞에 놓고 하루 일과표를 짜던 영롱한 첫마음으로 공부를 한다면,
사랑하는 사이가 처음 눈이 맞던 날의 떨림으로 내내 계속된다면,
첫 출근하는 날 신발끈을 매면서 먹은 마음으로 직장일을 한다면,
아팠다가 병이 나은 날의 상쾌한 공기 속의 감사한 마음으로 몸을 돌본다면,
개업 첫날의 첫마음으로 손님을 언제고 돈이 적으나 밤이 늦으나 기쁨으로 맞는다면,
세례 성사를 받던 날의 빈마음으로 눈물 글썽이며 교회 다닌다면,
나는 너, 너는 나라며 화해하던 그 날의 일치가 가시지 않는다면,
여행을 떠나는 날 차표를 끊던 가슴뜀이 식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그 때가 언제이든지 늘 새 마음이기 때문에 바다로 향하는 냇물처럼 날마다가 새로우며 깊어지며 넓어진다.
유명 타자들의 평균 타율표
괴로움에 싸인 어떤 사람이 그의 스승을 찾아갔다. 그는 두 손을 꼭 쥐고 말했다.
“선생님, 저는 패배자입니다. 제가 하는 일은 반밖에는 성공하지 못합니다.”
“아, 그래요?”
“선생님, 뭔가 지혜로운 방법을 좀 말씀해주십시오.”
한참 생각하고 나서 스승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 그래. 내가 방법을 하나 일러주지. 가서 1970년도 뉴욕 타임즈 연감의 930쪽을 보게나. 그러면 아마도 마음의 평화를 얻을 걸세.”
“그렇습니까.”
사나이는 인사를 하고 물러 나와 시킨 대로 했다.
그런데 그 930쪽에서 그가 알아낸 것은 바로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역대 유명 타자들의 일생 동안의 평균 타율표. 그들 가운데에서 가장 뛰어난 강타자인 타이콥은 평생 타율이 겨우 0.367이었고, 베이비 루드는 그만도 못했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이상해서 그 사나이는 스승한테 가서 매우 의심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타이콥은 3할6푼7리라는 그것 말씀입니까?”
“맞네. 타이콥은 3할6푼7리. 그는 세 번을 쳐야 겨우 한 번씩 안타를 친 걸세. 그는 5할도 못 때렸어. 그런데 자네는 무엇을 더 바라는가?”
“알겠습니다.”
제가 하는 일의 겨우 반밖에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을 패배자라고 생각했던 그 사나이는 대답했다.
사랑의 유언
매우 값진 예술품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 굉장한 부자가 있었다. 그에게는 평범한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청년기를 지나자 죽고 말았다. 부자는 무척 아들을 사랑했기 때문에 슬픔에 빠져서 앓다가 몇 주 후에 심장 마비로 죽게 되었다.
부자의 유언은 모든 재산을 경매로 팔라는 것이었는데, 이상한 것은 유화로 된 아들의 초상화를 첫번째로 경매에 붙이라는 단서를 걸어 놓은 것이었다.
널리 소문난 수집품을 사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유언에 따라 소년의 초상화가 제일 먼저 경매에 올려졌다. 죽은 소년의 초상화에는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그 소년을 항상 사랑했던 늙은 흑인 하인이 75센트에 그 그림을 샀다. 다른 경매자가 없었기 때문에 그 그림은 그 흑인에게 단번에 팔렸다.
바로 이 때 극적인 순간이 찾아 왔다. 경매는 중단되고, 그림을 살 만큼 그 소년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 집에 있는 모든 것을 주라는 아버지의 유언이 공개되었던 것이다.
눈물의 합격 통지서
1993년 5월경, 고3 수험생인 재용이가 자주 머리가 아프다고 하자 어머니 황선애 씨는 그저 흔한 ‘고 3 병’ 쯤으로 가볍게 생각했다. 그러나 두통증세가 심해 뒤늦게 병원을 찾았을 때 재용이에게는 ‘임파선암 4기’라는 믿기 어려운 진찰결과가 내려졌다. 오로지 대학에 가기 위하여 열심히 공부만 해 온 재용이는 너무나 큰 충격과 절망에 책상과 의자를 부수며 몸부림쳤다. 그에게 더이상 희망이란 없는 듯했다.
그러나 재용이는 다시 일어섰다. 고등학교 3학년 학생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겠노라고 마음을 달리 먹은 것이다. 계속되는 항암치료로 재용이의 머리카락은 하나 둘 빠졌고 몸도 바싹 야위어갔다. 어머니는 아들이 병석에서 힘들게 공부하는 모습이 애처로워 학교를 그만 쉬게 하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재용이의 굳은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12월, 재용이는 졸업에 필요한 출석일수에 열흘이 모자라게 되어 아픈 몸을 이끌고 학교로 나갔다. 어머니의 부축을 받으며 가까스로 출석일수를 채운 날 어머니와 재용이는 부둥켜 안은 채 한참동안 울었다. 재용이는 이제 당당히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비록 입원실이었지만 당당히 학력고사도 치르게 되었다.
다음해 1월, 재용이는 병상에서 한남대 경영학과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하루라도 대학생이고픈 바람이 이루어진 그 날, 어머니와 재용이는 많은 눈물을 흘렸다. 그것은 마지막 생이 다할 때까지 용기를 잃지 않고 열심히 삶을 살겠다는 희망과 의지의 아름다운 눈물이었다.
백악관의 빛
새벽 두 시, 백악관의 밤은 점점 깊어갔다. 루즈벨트 부인의 비서인 탐슨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복도를 서성였다. 루즈벨트 부인이 그 때까지도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탐슨은 시계가 두 시를 넘어서자 루즈벨트 부인의 방문을 두드렸다.
“부인, 밤이 늦었습니다. 무엇을 그토록 열심히 하십니까?”
“아, 네, 이제 마지막 한 장 남았습니다.”
루즈벨트 부인은 책상에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그녀는 그 때까지 갖가지 고민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보낸 편지에 답장을 하고 있었다.
“왜 일일이 답장을 하십니까? 인쇄물로 하시면 될 터인데…….”
“뭐라구요? 그런 종이 조각을 받으면 사람들은 분명히 실망할 것입니다.”
당시 미국사회는 극심한 경제 혼란기로 하루하루 먹을 빵이 없어 굶는 사람들이 들끓고 있었다. 가난, 굶주림,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도움의 손길을 대통령의 부인에게 호소했다. 루즈벨트 부인은 그 편지를 받고 힘닿는 대로 자선단체나 병원 등을 소개해주었고 위로의 답장을 손수 써서 보내주었다.
“부인, 그렇지만 이들 중 많은 사람이 거짓으로 편지를 보낼 수도 있습니다.”
탐슨이 이렇게 얘기하자 루즈벨트 부인이 말했다.
“아닙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절박한 심정에서 하는 데까지 해보다가 결국 마지막으로 편지를 제게 보냈을 거예요. 그들을 외면한다면 저는 평생 양심에 가책을 느낄 겁니다.”
루즈벨트 부인이 평생을 남을 위해 봉사하며 지냈던 힘은 스스로에 대한 양심에 있었던 것이다.
엘리베이터 안내를 맡은 까닭
미국 뉴욕시에 있는 제법 큰 백화점에서 점원을 모집하였다. 일자리를 원하는 청년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1차, 2차 시험을 거쳐 최종 합격된 청년들이 사장실에 모였다. 사장은 청년들을 둘러보며 앞으로 하고 싶은 일과 부서를 적어 내라고 했다. 모두들 한결같이 편하고 좋은 부서를 원했다.
그러나 유독 한 청년만은 엘리베이터 안내 업무를 맡겨 달라는 내용을 적어 냈다. 사장은 그 청년을 불러 왜 하필 힘든 일을 맡으려 하느냐고 물었다. 청년은 별다른 이유가 없다면서 그 일을 꼭 시켜달라고 부탁했다.
1년 후 청년은 매우 성실하여 많은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들었다. 이것을 기특하게 생각한 사장이 어느 날 청년을 불렀다.
“이제 그만하면 되었네. 다른 자리를 줄 터이니 한번 열심히 일해보게.”
“아닙니다. 3년간만 그 일을 계속하게 해주십시오.”
청년은 사장의 배려 속에 다시 엘리베이터 안내 업무를 맡게 되었다.
3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청년이 사장을 찾아왔다. 당당한 모습의 청년은 사장에게 두꺼운 서류뭉치를 내놓았다.
“이 서류에는 이 백화점에 오는 고객들의 신상에 관한 자세한 통계가 들어 있습니다. 백화점을 이용하는 고객들의 여러 가지 유형과 어떤 사람들이 어느 매장으로 가는지, 어떤 성질의 물건을 구입하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3년 동안 고객들 안내를 맡으면서 나름대로 조사한 것이니 한번 봐주십시오.”
사장은 그 서류를 훑어보더니 감격한 듯 말했다.
“자네야말로 우리 회사에서 꼭 필요한 사람일세!”
필라델피아의 가로등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 미국의 필라델피아라는 도시에는 약 7천명의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도시는 해가 지고 저녁이 되면 어둠의 도시, 공포의 도시로 변했다. 필라델피아의 거리에는 가로등이 없었기 때문에 날이 어두워지면 도둑, 강도, 불량배들이 거리로 나와 온갖 나쁜 짓을 저질렀다. 사람들은 무서움에 떨며 해가 지기 전에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른 저녁을 먹은 뒤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잠을 잤다. 밤에 거리로 나선다는 것은 필라델피아 시민으로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런 생활을 하다보니 필라델피아는 늘 어둠이 일찍 찾아왔고 그러면 그럴수록 도둑과 강도의 행패는 날로 심해졌다.
사람들이 하나 둘 필라델피아를 떠나는 가운데 어느 날 존 클리프톤이라는 사람이 이사를 왔다. 존은 새로 이사온 도시가 전에 있던 마을과는 다르게 매우 어둡고 무서운 도시라는 생각을 했다.
“이 마을에 범죄자들이 들끓는 것은 도시가 어둡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거리가 조금이라도 밝아진다면 밝은 곳 아래선 죄를 짓지 못할텐데…….”
이렇게 생각한 존은 밤에도 거실의 불을 켜놓았고 대문 입구에는 등을 매달아 놓았다. 캄캄한 필라델피아에서 유일한 빛은 존의 집뿐이었다. 그 뒤 이상하게도 존의 집 근처에서는 범죄가 일어나지 않았다.
존의 집 불빛이 새벽까지 거리를 환하게 비추자 사람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등불을 켜놓기 시작했다. 며칠새 존이 살고 있는 지역의 부근이 밝은 빛으로 가득 찼다.
등불의 수는 수백 개로 점점 늘어갔다. 그만큼 필라델피아의 밤거리는 밝아졌다. 강도와 범죄자들은 그 등불 아래서 하나 둘 사라졌고 거리엔 밝게 웃는 시민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정영길 씨의 비밀
석탄공사 장성광업소 정영길 씨 별명은 ‘수전노’, ‘구두쇠’였다. 그는 회비를 내야하는 직원들의 회식자리엔 늘 핑계를 대 빠졌고 아침 저녁은 라면과 국수로 때웠다. 정영길 씨는 그렇게 아껴 월급의 일부만을 저축하고 있었는데 나머지 돈은 어디에 쓰는지 아무도 몰랐다.
어느 날이었다. 그 날은 가까운 산으로 야유회를 떠나기로 한 날이었는데 뜻밖에도 정영길 씨가 따라나섰다. 동료들은 갑자기 변한 그의 태도에 죽을 때가 다 됐나보다라고 농담을 할 정도로 놀랐다. 그러나 그 농담은 진짜가 되고 말았다. 정영길 씨가 산행 중 발을 헛디뎌 계곡에 떨어져 죽고 만 것이다.
동료들은 그의 유품 중에 서울의 손정수라는 사람 앞으로 매달 10만원씩 보낸 정영길 씨 명의의 무통장입금증을 발견했다.
“영길 씨는 고아인데……. 누구에게 빚을 진 건가?”
의아하게 생각한 동료들이 손정수라는 사람을 수소문했다. 손정수 씨는 대학교 4학년인 학생이었다. 그는 통곡하며 말했다.
“영길이와 나는 형제입니다. 우린 고아원에서 만나 지금까지 형제로 지내왔습니다. 우리는 무척 가까운 사이였지요. 우리가 헤어진 건 영길이가 장성광업소에 일자리를 구하면서부터입니다. 그 때 나는 대학에 합격하였습니다. 우리는 자주 만나 서로의 설움을 달랬습니다. 한번은 내가 노동품을 팔아 학비 대는 것이 여간 힘들지 않아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말하자 영길이는 나를 꾸짖고는 자신이 매달 생활비를 대주겠다고 하더군요. 그 때부터 영길이는 저에게 매달 십만원씩 보내왔습니다.”
1990년 7월 31일 태백의 어느 절에서 정영길 씨는 한 줌의 재로 이승을 떠났다. 손정수 씨는 울부짖었다.
“영길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너를 이 산자락에 뿌리는 것이로구나.”
나는 닭이야!
어떤 사람이 독수리 알을 주워 자기 집 뒤뜰에 있는 닭장 안에 가져다 놓았다.
독수리 알은 병아리와 부화되어 함께 자랐다. 어린 독수리는 어미 닭을 쫓아다니며 스스로를 닭이라고 생각했다. 독수리는 병아리들이 하는 대로 땅바닥을 발로 긁고 벌레를 부리로 콕콕 찍어 잡아먹었다.
독수리의 날개는 푸드덕 서너번 날갯짓을 할 뿐 날지 못했다. 독수리는 점점 닭이 되어갔다.
세월이 흐르고 어느 덧 늙어버린 독수리는 어느 날 문득 하늘을 쳐다보다가 한 마리 새를 발견했다. 그 새는 금빛 날개를 여유 있게 펄럭이며 세찬 바람 속을 유유히 날아갔다.
독수리는 그 당당한 새의 모습에 부러움과 경외심을 느끼며 옆에서 모이를 쪼고 있던 닭에게 저 새가 무슨 새냐고 물었다.
“저 분은 새들의 왕이신 독수리님이야.”
“야 나도 저렇게 날아봤으면…….”
그러자 닭이 비웃으며 말했다.
“엉뚱한 생각 말아! 너와 난 그분과는 다른 신분이야.”
늙은 독수리는 쓸데 없이 크기만 한 날개를 접으며 생각했다.
“맞아, 나는 닭일 뿐이야.”
끝까지 닭이라고 생각한 독수리는 평생 모이만 쪼다가 죽었다.
20만 명의 합창단
카네기 제철소에서 일하는 해리에겐 꿈이 있었다. 노래부르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던 이 청년의 바람은 나라 안의 모든 사람들이 소리를 모아 마음을 같이하고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늘 마음속에 꿈을 간직하고 있던 해리는 어느 날 굳은 결심을 하고 뉴욕의 센트럴 파크 야외 음악당을 하루만 빌려 줄 것을 신청했다.
야외 음악당의 사용허가가 나온 첫 일요일, 해리는 깔끔하게 옷을 차려 입고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한가롭게 산책을 하며 공원을 거닐던 사람들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따뜻한 목소리를 듣고 무대 앞으로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해리는 사람들에게 조그만 책자를 나눠주며 말했다.
“여기 이 책 안에는 누구나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실려 있습니다. 자, 우리 모두 노래를 부릅시다.”
그가 아름다운 목소리로 먼저 노래를 부르자 많은 사람들이 따라 불렀다. 노래 소리는 공원을 빠져나가 큰 길가로 퍼져 나갔다. 버스나 택시를 타고 지나던 사람은 모두 고개를 창 밖으로 내밀고는 ‘무슨 일인가’ 하고 궁금해했다.
그 날 모인 사람은 3천여 명이나 되었다. 막이 내릴 무렵 해리는 다음 주에도 이 자리에 올 수 있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했다. 3천명 거의 모두가 손을 들었다. 이렇게 시작된 노래 모임은 주말마다 계속되었고 적어도 20만 명 이상이 매주 이곳을 찾아와 노래를 불렀다. 이것이 바로 ‘센트럴 파크의 노래와 빛의 제전’의 시작이었다.
얼마 후 센트럴 파크의 노랫소리는 전국민이 알게 되었고 일요일만 되면 비록 그곳에 직접 가지 않아도 마음속 깊이 노래를 따라 부르게 되었다. 꿈이 이루어진 날 해리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노래로써 모든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하나’라는 느낌을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꿈이 있는 한 모든 것이 가능함을 알아야 합니다.”
광부 프랭크
영국의 실크스톤 광산에서 있었던 일이다.
광부 프랭크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한 무리의 광부들을 이끌고 막장으로 향했다. 프랭크는 성격이 온화하고 다정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쟈드손 광부는 프랭크의 평판이 좋은 것을 늘 시기하고 툭하면 프랭크를 깎아 내리려고 했다. 더구나 쟈드손은 술을 좋아하고 싸움을 자주 벌이는 등 몹시 거칠어 동료들로부터 미움을 사고 있었던 터였다.
그 날은 막장 끝에 있는 기관실 천정에 대들보를 대는 작업이 주된 일이었다. 철제로 된 무거운 대들보를 여러 명이 달려들어 천정에 잇대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쿵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와르르 천정의 흙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대들보를 받치고 있던 광부들은 대들보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작업을 지휘하던 프랭크도 의식을 잃고 말았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프랭크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부하들의 신음소리를 들었다. 프랭크는 소리치며 바닥을 더듬어 부하들을 찾아다녔다.
“도와주세요, 반장님…… 여기예요!”
프랭크가 얼른 소리나는 곳으로 가보니 쟈드손이 쓰러져 있었다. 쟈드손은 거의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프랭크는 쟈드손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기 위해 그를 부축했다. 프랭크가 쟈드손의 어깨를 걸고 막 걸음을 내딛을 때였다.
“도와주세요.”
같이 일하던 아들 레오나드가 프랭크의 발밑에서 쓰러진 채 도움을 구하고 있었다. 프랭크는 순간 멈칫했다. 그러나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아들에게 말했다.
“아들아, 조금만 기다려라. 곧 돌아오겠다.”
프랭크는 아들의 고통스런 목소리를 들으며 쟈드손을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
이윽고 많은 사람들이 달려와 광부들을 구조했으나 프랭크의 아들 레오나드는 이미 숨이 끊어진 뒤였다.
도산 선생이 체포된 까닭
도산 안창호 선생은 일찍 잠을 깼다.
오늘은 상해에서 독립운동을 같이하는 동지의 어린 딸의 생일이었다. 소녀의 생일에 참석하여 꼭 축하를 해주겠노라고 도산 선생은 소녀와 며칠 전 약속을 했다. 오늘은 일찌감치 서둘러 소녀의 집에 들러야겠다고 생각한 도산 선생은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그 때 동지 한 명이 숨을 헐떡이며 방문을 열어젖혔다.
“다행입니다. 마침 계셨군요. 선생, 빨리 이 곳을 피하시오. 밖은 선생을 체포하겠다고 혈안이 된 일본 경찰, 헌병이 쫙 깔렸소. 여기도 위험하니 잠시 머물렀다가 이곳을 뜨셔야 합니다.”
도산 선생은 급보에 아랑곳하지 않고 옷 입기를 멈추지 않았다.
“오늘은 이곳에 머물러야 하오. 내 오늘은 꼭 지켜야 할 약속이 있소.”
“안됩니다. 지금은 나가시면 안됩니다.”
크고 작은 것으로 약속을 저울질하지 않았던 도산 선생은 동지들의 완강한 부탁을 뿌리치고 거리로 나섰다.
거리는 일본 경찰들의 삼엄한 경비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도산 선생은 골목 어귀에서 잠시 주춤했다. 그러나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무사히 소녀의 집에 도착한 도산 선생은 소녀의 기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소녀의 집을 나온 도산 선생은 일본 헌병의 호각소리에 쫓겼다. 사력을 다해 뛰어가던 도산 선생 앞을 일본 경찰이 막아섰다.
그 후 도산 선생은 상해에서 한국으로 압송되었고 감옥에서 큰 고통을 겪었다.
고사리 저금통
1990년 4월 프랑스 샤클레 연구소 수석연구부장이었던 노만규 박사가 귀국했다. 그는 서울대 교환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고국 땅을 밟은 것이었다. 그를 세계적인 과학자로 이끈 것은 어느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의 저금통이었다.
1950년대, 전쟁 끝의 가난과 절망을 뒤로하고 노만규 박사는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의 마음속엔 가난한 나라를 일으키려는 굳은 결심이 서 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덕에 청년 노만규는 하버드 대학원에 장학생으로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을 얻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기쁨도 오래가지 않았다. 비록 장학생이긴 했으나 입학금 23만원이 있어야 입학이 가능했던 것이다. 단돈 만원도 가지고 있지 않던 노만규는 어디서 돈을 꿀 만한 곳도 없었고, 고국에 있는 가난한 아버지에게는 더더욱 부탁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쩌면 그는 입학금 때문에 학교를 가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그의 딱한 사정이 1959년 11월 16일자 민주일보에 실리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모두 가난했던 시절이라 많은 사람들은 끌끌 혀만 찰 뿐이었다.
어느 날 노만규에게 고국으로부터 얼마의 돈이 전해져 왔다. 그 돈은 국민학교 1학년 꼬마가 보내온 것으로 군것질을 참아가며 모은 저금통을 몽땅 턴 것이었다. 노만규는 솟구쳐오는 뜨거운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국민학교 일학년 꼬마가 보내준 그 성금은 노만규에게 오로지 공부와 연구를 계속할 것을 바라는 것이었다. 그 뒤 그는 꼬마의 소망을 가슴에 심고 열심히 공부에만 전념했다.
30년이 흐른 지난 90년, 세계적인 과학자가 되어 고국을 다시 찾은 노만규 박사는 그해 11월 어느 신문사의 주선으로 꼬마 은인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꼬마는 어느새 머리가 벗겨진 중년이 되어 있었다.
“큰 일 한 것도 아닌 데 이러지 마십시오.”
중년남자는 노만규 박사가 눈물을 흘리자 머쓱해 하며 겸손해 했다.
어떤 쪽지
어느 호텔에 한 접객주임이 새로 채용되었다. 그는 새 일터에서 열심히 일해보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었다.
부임한 지 얼마 안 되어 그는 청소원들을 불러 호텔 곳곳을 깨끗이 청소할 것을 명령했다. 그는 호텔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귀빈실 고급소파에 어떤 노인이 앉아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노인은 인상도 과히 좋지 않은데다가 옷은 낡고 매우 초라해 보였다. 접객주임은 그 노인이 호텔의 고급스런 분위기를 망친다고 생각했다. 다른 손님들 눈에라도 띈다면 큰일 날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노인이 담배까지 피우며 금방 일어설 것 같지 않자 그는 슬며시 노인에게 다가가 무언가 쓴 쪽지를 건네주었다.
잠시 후 노인은 저쪽으로 사라져버렸다. 그 쪽지엔 다음과 같은 말이 적혀 있었다.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즉시 이곳을 떠나주시오.”
그리고 며칠 뒤 호텔 접객주임은 이상한 메모를 전달받았는데 그것을 받아 쥔 접객주임은 매우 놀랐다. 그 메모는 이런 것이었다.
“남의 귀에 소문나지 않게 즉시 호텔을 떠나주시오.”
알고보니 그 주임이 내쫓은 허름한 노인이 바로 이 호텔의 경영주였다.
경영주는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은 그 호텔에서 일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 나머지 똑같은 방법으로 해고통지서를 보낸 것이다. 주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조용히 호텔을 떠났다.
뒤바뀐 죽음
미국 남부지방의 어느 작은 마을, 잔잔한 호수와 나즈막한 언덕이 있는 이 마을에는 친구의 죽음을 추모하는 작은 비석이 있다. 비석에는 다음과 같은 비문이 써 있다.
“나를 대신하여 죽은 나의 친구 윌리 리어를 추모하여 이 비석을 세워 바칩니다.”
미국의 남북전쟁 때의 일이다. ‘덤불게릴라’라고 불리는 첩보원들이 북군에게 포로로 잡혀왔다. 이들은 군사재판을 거쳐 곧 사형에 처해지게 되었다.
북군병사인 윌리 리어는 순찰 도중 우연히 게릴라 단원 중에 어렸을 때부터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윌리는 친구가 사형되기 전 몰래 수용소를 찾았다.
“자네 이게 어찌된 일인가? 자네 같은 사람이 왜 간첩으로 활동했나?”
윌리는 말을 잇지 못하고 친구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친구도 그저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그 날 밤 윌리는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저 친구에게는 늙으신 부모와 부인 그리고 어린 자식들이 있는데 이렇게 죽는다면……. 차라리 내가 저 친구를 위해 대신 죽을 수만 있다면, 나는 부모도 자식도 없으니 여러 사람이 슬픔을 겪지 않아도 될 터인데…….’
윌리는 새벽이 막 밝아올 무렵 다시 수용소를 찾았다. 그리고 친구를 구석진 곳으로 데리고 가서 옷을 벗게 했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하는 친구에게 윌리는 자신의 군복을 입혔다.
“여기서 빠져나가게. 뒷일은 내가 알아서 할 것이네. 이 길을 따라 태연하게 정문으로 나가면 될 걸세. 빨리!”
친구는 윌리에게 꼭 살아서 도망칠 것을 다짐시킨 후 그 곳을 벗어났다. 그러나 윌리는 도망칠 기회가 없었다. 만약 자기가 도망쳐 모든 사실이 발각되면 친구는 다시 고향에서 이 곳으로 잡혀 올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윌리는 끝까지 그 친구 행세를 하며 사형장을 걸어 들어갔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가족과 만나 행복하게 웃는 친구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어린 아이인 형과 동생이 싸웠다. 그걸 보고 어머니께서 형을 호되게 야단치셨다. 토라진 형이 뒷동산에 올라가 나팔손을 만들어 앞산을 바라보고 외쳤다.
“나는 너를 미워한다!”
그러자 앞산에서도 똑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너를 미워한다아!”
어린 아이는 놀란 나머지 황급히 집에 돌아와 어머니에게 말했다.
“엄마 산 너머에서 누군가 ‘나는 너를 미워한다’고 나에게 소리지르는 아이가 있어요.”
이 말을 듣고 어머니가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아들에게 일렀다.
“얘야, 다시 뒷동산에 올라가서 이번에는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외쳐봐라.”
동산에 올라간 어린 아이는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러자 산너머에서도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아!”
사랑은 사랑으로
1951년 미군 비행기 조종사 블루베이커 소령은 부산에서 전쟁통에 일을 잃고 헤매는 장명수라는 소년을 아들로 삼았다. 소년은 ‘존’이라 불려졌다.
어느 날 소령은 출격명령을 받았다.
“얘야, 걱정 말거라.”
블루베이커 소령은 날씨를 걱정하는 열두 살 난 명수의 작은 어깨를 꼭 껴안았다. 제트기가 떠나고 한 시간쯤 지나서 출동 비행기가 한두 대씩 기지로 되돌아왔다. 그러나 소령의 비행기는 눈에 띄지 않았다. 명수는 우연히 소령의 비행기가 바다에 추락했음을 엿들었다. 그리고 명수는 곧 출격될 구조 헬리콥터에 몰래 숨어들었다.
비행기는 두 동강이 나 있었고 소령은 비행기 날개부분에 기절한 채 떠 있었다. 구조 헬리콥터가 그 곳에 도착해서 구조작업을 벌였다. 먼저 하사관 한 명이 밧줄을 타고 내려가 소령의 몸에 밧줄을 매려고 했다. 그런데 파도가 워낙 세고 바닷물이 얼음장 같이 차가워 구조 작업을 하던 하사관도 그만 기절하고 말았다. 하사관이 무전연락을 해오지 않자 헬리콥터가 밑으로 낮게 하강했다. 그러나 헬리콥터에는 조종사뿐이어서 구조를 할 사람이 없었다.
그 때 한쪽 구석에서 명수가 엉금엉금 기어 나오더니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것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명수는 바닷물 속에서 소령과 하사관의 몸을 밧줄로 묶고는 큰 소리로 외쳤다.
“아저씨! 이제 끌어올리세요!”
헬리콥터는 줄을 당기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명수는 거센 파도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심한 충격으로 이틀만에 깨어난 블루베이커 소령은 명수의 죽음을 알고는 통곡했다.
“한 한국 소년이 나를 살리다니……. 내가 그에게 준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작은 사랑뿐이었는데 그는 목숨을 내놓았다.”
열려있는 문
스코틀랜드의 외딴 산골에 어머니와 단둘이 살아가는 어떤 여인이 있었다. 여인은 지긋지긋한 가난이 싫어 어머니를 홀로 남겨둔 채 집을 나오고 말았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난 어느 날 그녀는 우연히 교회에 갔다가 영국의 유명한 전도사 위버의 부모 사랑에 관한 설교를 듣게 되었다. 설교에 감동한 그녀는 어머니의 용서를 구하기 위해 고향으로 향했다. 그녀는 한밤중이 되어서야 겨우 어머니의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침 비까지 내려 그녀의 몸은 흠뻑 젖어 있었다. 어머니의 집은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그녀는 심호흡을 한 뒤 문을 살며시 두드렸다. 안에서 인기척이 없자 그녀는 다시 문을 두드렸다. 역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혹,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이 아닐까? 다른 사람이 이사를 왔는지도…….’
그녀는 문을 슬쩍 밀어 보았다. 뜻밖에도 문은 열려 있었다.
‘한밤중에도 문을 열어 놓고 있다니…….’
그녀는 어머니의 침실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누구세요?”
그것은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어머니, 저예요.”
“이런, 드디어 돌아왔구나!”
어머니는 울면서 그녀를 껴안았다. 어머니는 그녀를 위해 젖은 옷을 말려 주었고 따뜻한 음식을 마련했다.
“어머니 죄송해요. 용서해주세요. 그런데 왜 밤에 문을 열어놓고 주무시나요. 이런 외딴 집에서….”
“난 네가 집을 나간 날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문을 잠그지 않았단다. 만약 네가 밤중에라도 돌아오면 어떡하니. 그래서 한밤중에 멀리서 볼 수 있도록 불도 켜놓았고, 문도 열어 놓았던 것이란다.”
그녀는 흐느끼며 어머니의 갈라진 손을 더욱 꼬옥 붙잡았다.
물통 하나
큰 전투를 치르고 난 뒤였다. 한 병사가 총탄에 맞아 피를 많이 흘리고 애타게 물을 찾았다. 그것을 본 분대장이 자기 물통을 그 병사에게 주었다.
급하게 물통을 받아든 병사는 막 물을 마시려고 하는 순간, 소대원 모두가 자기가 든 물통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음을 알았다. 모두들 목이 말랐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본 병사는 물을 꿀꺽꿀꺽 마신 후에 물통을 소대장에게 넘겼다. 소대장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 물통을 받아 꿀꺽꿀꺽 물을 마시고 물통을 상사에게 넘겼다. 상사도 물을 꿀꺽꿀꺽 마신 후 위계질서에 따라 다른 병사에게 물통을 넘겼다. 그렇게 하여 소대원이 차례차례 물을 마신 후 맨 마지막으로 신병에게 물통이 넘겨졌다.
물통을 받아든 신병은 깜짝 놀랐다.
수많은 소대원이 모두 물을 마셨는데도 물은 조금도 줄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모두들 다음 사람을 생각하고 물을 마시는 시늉만 했던 것이다.
신병도 상급자들처럼 물을 꿀꺽꿀꺽 마신 뒤에 처음 물통을 받았던 부상당한 병사에게로 다가가 물을 마시게 했다. 그러한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소대원들은 모두 목마름을 잊어버렸다.
진짜 죄인
로마시대에는 죄지은 사람을 세상과 격리시키기 위해 바다 위에 떠있는 배에 가두었다. 일명 죄수선이라 불리는 이 감옥은 갇히게 되면 육지로 돌아올 확률이 거의 없을 정도로 무서운 곳이었다. 그래서 죄수들은 틈만 나면 도망칠 기회를 엿보았다.
하루는 총독이었던 오스너가 죄수선을 순시했다. 오스너 총독은 죄수들 한 명 한 명에게 무슨 죄로 끌려왔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한결같이 자신들은 죄가 없는데 억지로 끌려왔다는 투로 얘기했다. 죄수들은 총독에게 자신들은 무죄이므로 풀어 달라고 성화였다.
“이 배에는 모두 죄가 없는 사람들만 모였군.”
총독이 이렇게 말하자 죄수들은 모두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런 아직까지 죄를 뉘우치지 못하다니…….’
총독이 몹시 언짢아 돌아설 때였다. 총독의 눈에 숨죽이며 우는 죄수 한 명이 보였다.
“자네는 왜 우는가?”
“예, 저는 여기 있는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전 진짜 죄를 지었죠. 저는 배가 고파 우는 아내와 자식들을 위해 물건을 훔쳤답니다.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죄수의 말을 들은 총독이 보란 듯이 소리쳤다.
“허허, 거 참 못된 놈이로고,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착한 사람인데 죄지은 자가 여기 있다니 괘씸하다. 여봐라! 이런 놈을 착한 사람들과 같이 둘 수 없으니 당장 이 배에서 내리도록 하라.”
총독은 죄인의 어깨를 아무도 모르게 살짝 두드렸다. 그리고 진짜 죄인은 무사히 그 배에서 내렸다.
처칠의 차
처칠 수상이 하루는 국회에 나가서 연설하게 되었는데, 손님을 맞이하다가 그만 시간이 늦었다. 그래서 신호를 무시해서라도 예정된 시간 안에 국회에 도착하라고 운전 기사에게 지시하였다.
신호를 무시하고 국회로 가던 도중에, 교통 경찰관이 달려 와서 차를 세웠다. 운전 기사는 당연하다는 듯이, 당당하게 경찰관에게 이야기하였다.
“수상 각하의 차요. 지금 국회에 가는 길인데, 시간이 늦어서 급히 가는 중이오.”
그러나 교통 경찰관은
“수상 각하를 닮긴 닮았는데, 수상인 처칠 경의 차가 교통법규를 위반할 리가 없소. 면허증을 내놓고 내일까지 경찰서로 출두하시오.”
교통 경찰관은 수상의 차를 교통법규 위반으로 적발하였다. 처칠은 교통 경찰관이 자기의 직무를 수행하는 태도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튿날, 처칠은 경시청 총감을 불러서 그 교통 경찰관을 한 계급 특진시켜 주라고 명령하였다. 그러나 경시청 총감은
“경찰 조직법에 그런 규정이 없어서 특진을 시킬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명령을 거절하였다. 처칠은 경시청 총감이 규칙을 준수하려는 태도를 보고 다시 한 번 감동을 받았다.
리 장군의 양보
남북 전쟁의 영웅 리 장군이 탄 전차에서 있었던 일이다.
전차가 정류장에 설 때마다 올라타는 사람들로 전차 안은 만원이었다. 어느 정류장에서 초라한 옷차림의 할머니 한 분이 타셨다. 허리가 굽은 할머니는 전차가 움직일 때마다 이리저리 비틀거렸다. 그러나 누구 한 사람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이 없었다.
“할머니, 이 쪽으로 와서 앉으세요.”
할머니와 꽤 떨어진 곳에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전차 안의 모든 시선들이 그 쪽을 바라보았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리 장군이었다.
할머니를 부축해 온 장군은, 자기 자리를 할머니께 양보하고, 조금 비켜서 손잡이를 잡고 서 있었다. 차 안의 많은 손님들이 그 때서야 장군께 자리를 양보하였다.
“아, 고맙소. 그렇지만 참 이상들 하십니다. 정말 자리를 양보하려면 내가 아니라 저 할머니께 했어야 옳지 않았겠소.”
일어서서 장군께 자리를 양보하려던 한 청년 손님은, 다시 앉을 수도 없어 엉거주춤 서 있다가 다음 정류장에서 슬며시 내려버렸다.
그 빈자리에는 아무도 앉을 수가 없었다. 전차 안은 갈수록 복잡해졌지만, 그 빈자리는 오래도록 그대로였다.
한 여인의 잘못과 용서
한 농부의 아내가 그 동네에서 존경받는 어른에 대해 헐뜯는 말을 퍼뜨렸다. 그래서 온 마을에 그 소문이 퍼졌다. 얼마 후, 그 여인은 자신이 잘못했음을 깨닫고 그 어른을 찾아가 용서를 빌었다.
그러자 그 어른은
“당신이 나의 한 가지 바람을 따라 준다면, 기꺼이 당신을 용서해주겠다.”
라고 말했다.
“기꺼이 하겠습니다.”
하고 여인이 말했다.
“집에 가서 검은 암탉 한 마리를 잡아 그 깃털을 뽑고, 그것을 바구니에 담아 가져오십시오.”
30분 후에 여인이 돌아왔다.
“이제 마을로 가서 각 거리 모퉁이마다 이 깃털을 뿌리고 돌아오십시오.”
여인은 시키는 대로 했다.
“이번에는 마을로 다시 가서 그 깃털을 다 모아 오십시오. 그리고 한 개도 잃어버린 것이 없나 살펴보세요.”
이 말을 들은 여인은 놀라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것은 불가능해요. 바람이 그것들을 들판 저 너머 사방으로 날려 보냈을테니까요.”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겠습니까? 제가 당신을 용서는 하겠지만, 당신이 말한 그 거짓된 말들이 일으킨 피해를 취소할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부처님의 가르침
어느 날, 부처님이 제자 아난과 길을 가고 있었다. 거리는 한산하여 지나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길을 걷다 보니, 저 앞에 웬 종이가 한 장 떨어져 있는 게 보였다.
“저 종이가 무엇이냐?”
그러자 아난이 달려가 그 종이를 주워 왔다.
“아마 향을 쌌던 종이인가 봅니다. 향기로운 내음이 배어 있습니다.”
아난은 종이를 이리저리 살펴보고 나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또 한참을 가다 보니, 이번에는 웬 새끼줄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부처님은 아난에게 그 새끼줄을 가져오라고 했다.
“지독한 냄새가 나는 것을 보니 이 새끼줄은 분명 썩은 생선을 묶었던 것 같습니다.”
아난이 새끼줄을 가져오며 말했다. 그러자 부처님이 조용히 미소지으며 말했다.
“보아라. 사람도 이와 같은 것이다. 악한 일을 많이 한 사람은 썩은 생선을 묶었던 새끼줄처럼 고약한 냄새가 나고, 착한 일을 많이 한 사람은 향을 쌌던 종이처럼 맑고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것이란다.”
뱃길을 따라
1962년 2월, 여수의 어느 초등학교 졸업식에서의 일이다. 6개년 개근상을 받는 13살짜리 딸과 그의 어머니가 받는 ‘장한 어머니상’으로 졸업식장은 숙연했다.
이들 모녀는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 섬에서 산다. 이 섬은 집이 세 채밖에 안 되고 주민은 겨우 20명 남짓하여 육지에 볼일이 있을 경우 섬사람들이 직접 만든 배를 타고 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 섬마을 사람들은 자식이 커도 학교 교육은 감히 엄두조차 못 냈다.
딸이 일곱 살이 되자, 어머니는 남편과 의논을 했으나 허사였다. 공부는 해서 무엇하며, 설사 학교에 들어간들 무슨 수로 20리가 넘는 먼 뱃길을 6년간 다니느냐며 한사코 반대했다. 당시 그 섬에는 교육을 받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어머니는 몰래 딸을 데리고 육지의 학교에 입학을 시키고야 말았다.
억척스러운 모정의 뱃길이 열렸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6년 동안 작은 배의 노를 저었다. 어머니의 정성은 지극했다. 시계도 없는 섬에서 매일 시간을 맞춰 딸을 학교에 보내고 데려오는 일에 한치의 어긋남도 없었다.
딸은 어머니가 고마워서 울었고, 어머니는 딸이 대견스러워 울었다. 식장 안은 온통 울음바다가 되었다.
노란 모자를 잡아라
따스한 봄날. 유치원 꼬마들을 가득 태운 버스가 소풍길에 올랐다. 창가에 매달려 창 밖으로 손을 내밀고 웃는 아이들의 표정은 무척 밝았다.
그 때 한 아이의 노란 모자가 바람에 휙 날아가버렸다. 아이들은 모두 고개를 내밀어 바람에 둥실 날리다가 도로 바닥에 떨어지는 모자를 쳐다보았다. 모자를 잃은 아이는 거의 울상이었다.
유치원 버스 뒤로는 한 노선버스가 뒤따르고 있었다. 노선버스 운전사는 바람에 떨어지는 노란 모자를 보았다. 그는 승객에게 양해를 구한 뒤 버스를 세우고는 그 노란 모자를 주웠다. 버스는 다시 출발해 조금 속력을 내는가 싶더니 어느새 멀어진 유치원 버스를 따라 잡았다. 운전사는 유치원 버스 운전사에게 멈추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차창으로 노란 모자를 힘껏 던져 주었다. 순간 모자를 받아 쥔 아이들은 일제히 ‘와!’ 하고 큰소리를 지르고 손을 흔들며 기뻐 어쩔 줄 몰라했다.
두 대의 버스는 나란히 달렸다. 아이들은 그 때까지도 손을 흔들고 있었고 노선버스를 탄 승객들도 덩달아 웃고 있었다.
시장님의 신문 배달
덴마크에 요한이라는 부지런하고 책임감이 강한 신문 배달 소년이 있었다. 요한은 신문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신문 뭉치를 옆구리에 끼고 뛰어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배가 아팠다. 요한은 배를 움켜잡고 길바닥에 주저앉았다.
“얘야, 왜 그러니? 어디가 아프냐?”
그 곳을 지나던 신사가 물었다.
“예, 별안간 배가 아파서…….”
“큰일났구나! 내가 너의 집까지 데려다 줄까?”
“아녀요, 저는 괜찮아요.”
“괜찮다니? 그럼 뭐가…….”
“신문 배달이 늦어져 걱정이에요.”
일어서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더욱 아파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런 경황에……. 기특하구나. 내가 네 대신 신문을 배달해줄게.”
“고맙습니다. 빠뜨리는 집이 없도록 해주셔요.”
“오냐, 걱정 말아라.”
신사는 신문 뭉치와 독자들의 이름이 적힌 노트를 챙겼다.
그 날 저녁 그 신사는 문병을 왔다.
“아무 걱정 말고 편히 쉬도록 해라.”
요한은 다 나아서 다시 신문을 돌렸다. 신사에게 고맙다고 다시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찾을 길이 없었다. 궁리 끝에 시청에 찾아가 부탁을 해 보았으나 이름과 주소를 모르기 때문에 찾을 수가 없었다. 실망한 요한이 힘없이 시청을 나설 때, 한 대의 자동차 문이 열리면서 시장이 차에서 내렸다. 요한은 시장을 보고 깜짝 놀랐다. 시장이 바로 그 친절한 신사였다.
통화 시간
누가 인사말을 길게 하느냐 하는 세계 대회가 벌어졌다. 준결승에 오른 인도대표인 두 스님(바라문)이 나와 인사를 나눈다. “거룩하신 바라문의 덕망은 산보다……” 하면 “거룩하신 바라문의 지혜는 바다보다……” 하면서 좋은 말은 다 들추어 인사를 주고받는다. 아랍대표는 이 인도대표를 물리치고 결승에 오른다.
두 사람의 아랍대표(베두인족) 인사말을 들어보자. “할아버지는 안녕하신가?”로 시작하여 외손자, 조카 며느리까지 샅샅이 안부를 묻고 이어 그 집에서 키우고 있는 짐승의 안부를 묻는다. “낙타는 안녕하신가? 양은 안녕하신가?, 고양이는……” 하는 식으로 줄줄 이어진다.
그러나 이 아랍대표도 무대에서 참패를 당하고 내려간다. 우승을 안은 대표는 한국대표이다. 바로 조선 말기에 등짐을 지고 팔도를 누볐던 보부상. 들어보자.
“보아하니 동무이신 듯합니다.” “아이참, 동무이십니다 그려.” “첫인사는 올렸지만 거주지는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피차 일반이올시다.” “소생 살기는 진주…….” “좋은 데 계십니다. 소생 살기는…….” 이렇게 기본인사를 하고는 다시 보부상 전체의 안부에서 가족 모두의 안부를 묻고 각자가 지나온 마을의 알 만한 사람들의 안부까지 묻는다. 이 인사만 해도 좋게 10분이 걸린다고 하니 아랍대표가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지금도 우리 한국인이 긴 인사 부문에서 최고라고 한다. 한국전기통신공사가 내놓은 1인당 인사성 대화의 평균 통화 시간은 1분 47초. 다른 나라와 비교해보자.
미국은 54초, 영국이 50초, 프랑스 55초, 서독 60초, 일본은 1분 11초, 대만은 1분 20초다. 꼭 해야할 말보다 인사성 대화에서 예나 지금이나 세계 최고인 셈이다.
“걘 내 친구니까요”
월남전이 한창일 때, 조그만 월남인 부락의 고아원에 박격포탄이 떨어졌다. 몇 사람이 죽고 몇 명의 어린이가 부상을 당했다. 의사들이 급하게 도착했으며 그들은 부상자들 중 여덟 살 가량의 소녀를 먼저 치료하기로 결정했다. 부상이 심했던 것이다.
당장 수혈이 필요했다. 서둘러 검사를 해본 결과, 부상당하지 않은 고아들 중 몇 아이가 같은 혈액형이었다.
의사는 월남어를 몰랐다. 그렇지만 그는 필사적으로 손짓 발짓을 뒤섞어가면서, 박격포탄에 놀란 아이들에게 그 소녀가 흘린 피를 지금 보충해주지 않으면 틀림없이 죽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설명해주려고 애썼다. 누군가가 피를 나누어 주어야 한다고 말이다.
한참 후, 조그만 손 하나가 머뭇거리며 올라갔다가 도로 내려가더니 다시 올라갔다. 그 손의 주인공은 ‘헹’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오, 고맙구나 헹.” 간호원은 즉시 헹의 팔을 걷었다.
잠시 후, 헹은 자유로운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더니 몸을 떨었다.
“왜 그러니?”
헹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가 조금씩 흐느꼈다. 흐느끼는 소리가 새어 나오자 헹은 작은 손으로 자기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다 두 눈을 꽉 감더니 흐느끼는 소리를 죽이기 위해주먹을 입에 갖다 댄다. 당황한 의사와 간호원들이 어쩔 줄을 모르고 있을 때 마침 월남인 간호원이 도착했다. 사정을 들은 월남인 간호원은 헹과 몇 마디 말을 나누더니 싱긋이 웃었다.
“헹은 당신들의 말을 잘못 알아들었습니다. 당신들이 이 어린 소녀를 살리기 위해 자기 피를 전부 뽑아 주겠느냐고 물은 줄 알았던 거예요. 자기는 죽는거고요.”
“그렇다면 왜 이 아이는 자진해서 피를 뽑아주려고 했을까요?”
월남인 간호원이 헹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다.
이제는 울음을 그친 헹, 너무나 맑은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걘 내 친구니까요.”
월터 젠슨의 고향 방문 여행
통조림 회사에 근무하는 월터 젠슨은 그 해가 그에게는 마지막으로 근무하는 해가 된다. 40년 동안 일한 그는 곧 은퇴할 예정이었다.
그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무척 사랑했다. 그리고 그들도 그를 사랑했다.
이 회사에서는 정기적으로 ‘고향방문 여행’이라는 큰 행사를 가졌는데 매년 12월, 200가구에 이르는 근무자들은 한 가구당 5달러(그 당시의 하루 임금)와 자기 이름을 쓴 쪽지를 통에 넣는다. 그런 다음 사장이 눈을 가리고 쪽지 한 장을 뽑는다. 뽑힌 사람은 그 돈 모두와 회사에서 주는 적지 않은 축하금, 그리고 한 달간의 휴가를 가게 되는 것이다.
3시까지 모든 가구가 5달러씩 냈다. 그리고 행운의 제비를 뽑기 전에 사장은 월터를 불러 기념패를 주었다. 그것은 그가 여러 해 동안 우정과 친절로 성실껏 봉사한 데 대한 감사의 뜻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열광적으로 박수를 쳤다.
이어 사장은 다음 행사를 진행했다. 통 속에 손을 넣고 쪽지 한 장을 뽑았다. 사람들은 숨을 죽였다. 쪽지에 적힌 이름을 읽었다.
“월터 젠슨!”
환호성 때문에 귀가 멍멍할 지경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를 끌어안고 축하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통 속에 든 200여장의 쪽지에는, 글씨체는 달랐지만 모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월터 젠슨”
사람다운 사람
이솝이 어렸을 때 이야기다. 이솝의 주인은 훌륭한 학자였다.
어느 날 주인이 말했다.
“얘, 이솝아! 공중목욕탕에 가서 사람이 많은지 보고 오너라.”
이솝은 목욕탕으로 갔다. 그런데 목욕탕 문 앞에 끝이 뾰족한 큰 돌이 땅바닥에 박혀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목욕하러 들어가던 사람이나 목욕하고 나오는 사람 모두가 그 돌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어떤 사람은 발을 다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코가 깨질 뻔했다.
“에잇! 빌어먹을!”
사람들은 돌에 대고 욕을 퍼부었다. 그러면서도 누구 하나 그 돌을 치우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들도 참 한심하지. 어디, 누가 저 돌을 치우는가 지켜봐야지.’ 이솝은 목욕탕 앞에서 그것만 지켜보고 있었다.
“에잇, 빌어먹을 놈의 돌멩이!”
여전히 사람들은 돌에 걸려 넘어질 뻔하고는 욕설을 퍼부으며 지나갔다.
얼마 후에 한 사나이가 목욕을 하러 왔다. 그 사나이도 돌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이솝은 여전히 그 사나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웬 돌이 여기 박혀 있담!”
그 사나이는 단숨에 돌을 뽑아 냈다. 그리고 손을 툭툭 털더니 목욕탕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솝은 그제야 일어서더니 목욕탕 안에 들어가 사람 수를 헤아려 보지도 않고 그냥 집으로 달려갔다.
“선생님, 목욕탕 안에 사람이라곤 한 명밖엔 없습니다.”
이솝이 주인에게 말했다.
“그것 참 잘 됐구나. 너 나하고 목욕이나 하러 가자!”
주인이 말했다.
“네, 선생님!”
이솝은 주인과 함께 목욕탕으로 왔다. 그런데 공동탕 안에는 사람이 우글우글, 발을 들여놓을 틈도 없었다.
“이 녀석, 사람이 한 명밖에 없다고? 너 왜 거짓말을 했느냐?”
주인이 화를 내며 말했다.
“선생님, 제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이솝이 말했다.
“무슨 거짓말을 하려느냐?”
“아닙니다, 선생님. 목욕탕 문 앞에 뾰족한 돌부리가 튀어 나와, 사람들이 걸려 넘어지고 다치기도 했는데, 누구 하나 그 돌멩이를 치우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단 한 사람, 그 돌멩이를 뽑아 치우고 들어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제 눈에는, 사람다운 사람으로 오직 그 사람 하나가 보였을 뿐입니다.”
“허허, 그래서 그랬구나.”
주인은 훌륭한 학자답게 껄껄 웃었다.
목숨보다 귀한 우정
한 청년이 폭군이 좋아하지 않는 일을 저질렀다. 그 죄목으로 그는 감옥에 갇혔고 사형 날짜가 정해졌다. 그의 집은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그는 죽기 전에 부모님과 친구를 만나고 싶었다.
“집에 돌아가서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도록 한번만 허락해주십시오. 그러면 돌아와서 목숨을 내놓겠습니다.”
하고 그는 말했다.
폭군은 그를 비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네가 약속을 지킬지 어떻게 알겠는가? 너는 다만 나를 속여서 목숨을 건지겠다는 것이구나.”
그 때 그 청년의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아, 임금님! 제 친구 대신 저를 감옥에 넣어 주십시오. 그리고 그가 고향으로 가서 자기 일들을 정리하고 친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도록 해주십시오. 저는 그가 약속한 대로 돌아올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가 임금님이 정해주신 날짜에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 때는 제가 대신 죽겠습니다.”
폭군은 이러한 제의를 하고 나오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놀랐다. 마침내 폭군은 청년을 가도록 하고 대신 그의 친구를 감옥에 가두도록 명령했다. 날짜가 지나가고, 이윽고 사형 당할 날이 가까워졌다. 그러나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폭군은 간수에게 친구를 엄중히 감시하여 친구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친구는 도망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친구의 신의와 명예를 믿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제 친구가 제 시간에 돌아오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다. 그것은 그의 의지로써는 어쩔 수 없는 뜻밖의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마침내 그 날이 오고 그 시간이 되었다. 친구는 죽을 각오를 하고 있었다. 친구에 대한 그의 신뢰는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그는 자기가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괴로움을 당하는 것은 슬프지 않다고 말했다. 이윽고 간수가 와서 그를 사형장으로 데리고 가려고 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청년이 문 앞에 서 있는 게 아닌가. 그는 폭풍우를 만나 조난을 당해 늦은 것이었다.
그 임금은 폭군이라 해도 사람의 미덕을 알지 못할 정도의 악인은 아니었다. 그는 두 청년처럼 서로 사랑하며 믿고 있는 사람들이 부당하게 괴로움을 당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폭군은 두 사람을 모두 살려주었다.
장님과 절름발이
어느 날, 눈 먼 사람 하나가 혼자서 험한 길을 가게 되었다. 눈은 보이지 않고 길은 매우 험하여 몹시 고생을 하고 있었다. 때마침 한 절름발이가 그 곳을 지나가고 있었다.
불편한 다리로 험한 길을 가려고 하니 여간 힘드는 것이 아니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 인기척을 듣고 그가 절름발이인 줄을 모르고,
“여보시오, 나는 앞이 안 보여서 그러니 좀 도와주시겠소?”
라고 말하였다. 이 말을 들은 절름발이는
“당신은 눈이 안 보이지만 두 다리는 튼튼하지 않소. 한쪽 다리를 쓰지 못하는 나를 도와 줄 수는 없겠소?”
서로의 사정을 알고 딱하게 느끼던 중, 절름발이가 제안을 하였다.
“그러면 서로가 어려운 형편이니 우리 서로 힘을 모아 봅시다. 당신이 나를 업으면 나는 당신의 눈이 되고, 당신은 내 발이 되어 함께 갈 수 있지 않겠소?”
“그거 참 좋은 생각이오. 그렇게 합시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험한 길을 안전하게 갈 수가 있었다.
도둑과 스님
외딴 암자에서 일어난 일이다. 어느 이슥한 밤, 밤잠을 이루지 못한 노스님이 화장실에 다녀오던 길이었다. 방으로 향하려는데 어디선가 바스락거리는 인기척을 들었다. 스님이 소리나는 쪽으로 가보니 어둠 속에서 무엇인가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도둑이었다. 도둑은 지게까지 준비해서는 뒤주에서 쌀 한 가마니를 퍼내어 그것을 짊어지고 갈 참이었다.
그러나 도둑은 쌀짐이 너무 무거운지 지게를 진 채 벌떡 일어서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도둑은 그렇게 한참을 주춤거렸다. 이를 조용히 지켜본 스님이 발소리를 내지 않고 도둑의 뒤로 가 섰다. 그리고는 도둑이 다시 한번 일어서려 할 때 지그시 지게를 밀어주었다. 한층 가볍게 일어선 도둑은 그 힘에 놀라 힐끗 돌아보았다. 사람이 서 있는 걸 확인한 도둑은 들켰다는 생각에 오금이 저려왔다. 어떤 불호령이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도둑은 잔뜩 어깨를 움츠리고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 때 스님의 나즈막한 목소리가 어둠을 가르며 울려왔다.
“아무말 하지 말고 어서 내려가게.”
도둑은 그 길로 지게를 지고 산을 내려갔다.
다음날 아침, 암자에는 도둑이 들었다며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그러나 노스님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 후 그 도둑은 암자의 독실한 신자가 되었다.
함장에게 바친 노래
무뚝뚝한 스타크 함장의 함선에 4명의 말썽꾸러기 수병이 새로 승선하게 되었다. 같은 고향에서 자란 크레이코우, 크래지, 케니크, 켈리 이 넷은 모두 부모가 없었으며 다른 사람을 비아냥거리는 불손한 젊은이들이었다. 그래서 스타크 함장이 병사들에게 가장 가까운 가족의 이름과 주소를 물었을 때 이들은 리타 하이웨이 등 당시 유명한 여배우들의 이름을 댔다. 스타크 선장은 조롱하는 듯한 네 수병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그 여배우들의 이름을 수첩에 적었다.
며칠 뒤 함선에선 함장과 상관들을 놀리는 상스러운 노래가 들리기 시작했다. 네 명의 말썽꾸러기들이 어릴 때 성가대에서 닦은 실력으로 노래를 지어 부른 것이었다. 그 노랫소리를 못 들었는지 선장은 밤마다 누군가에게 열심히 편지를 쓸 뿐이었다.
겨울이 되자 구축함은 잠시 브룩클린에 정박하였다. 그 때 소포 수십 개가 스타크 선장 앞으로 배달되어 왔다. 선장은 소포를 풀지도 않은 채 탱크 속에 넣고 자물쇠로 문을 잠궜다. 그러자 네 명의 수병들은 선장이 마약 밀매를 한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이윽고 구축함은 다시 바다로 나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성탄절이 되었다.
저녁 무렵 선장은 병사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한 후 크리스마스 선물을 차례차례 나눠주었다. 그것은 모두 가족들이 보내온 것으로 스타크 선장이 틈틈이 가족들에게 편지를 보내 선물을 보내달라고 부탁한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선물을 받지 못해 시무룩한 네 명의 수병들 앞에 함장이 꾸러미를 던졌다. 거의 희망을 품지 않았던 이들은 부랴부랴 선물을 뜯었다. 크레이코우의 상자엔 놀랍게도 진짜 리타 헤이워드가 보낸 장갑과 편지가 들어 있었다. 나머지 세 명 역시 모두 여배우들의 선물을 받았다.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연단으로 올라가 함장을 위한 노래를 부르겠다고 자청했다. 수십 명의 병사들은 그들의 입에서 어떤 노래가 나올지 궁금했다. 잠시 후 어두운 밤바다를 가르며 아름다운 화음이 퍼져 나갔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느 새 스타크 함장도 옆에 서서 같이 노래를 따라 불렀다. 마침내 배 안의 모든 사람들이 한 목소리가 되었다.
원숭이 사로잡기
아프리카 한 지방에서는 재미있는 방법으로 원숭이를 잡는다.
원숭이가 있는 곳에 가죽으로 만든 자루를 매어 놓는다. 이 가죽 자루는 겨우 원숭이의 손이 드나들 정도의 작은 입으로 되어 있다. 이 가죽 자루 속에 원숭이가 좋아하는 과일을 하나 넣는다. 이 과일은 가죽 주머니의 입에 간신히 들어 갈 정도로 크고 단단한 것을 쓴다.
숨어서 원숭이가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얼마 후, 원숭이가 나타나 자루 속을 들여다보고, ‘이게 웬 떡이냐?’며 좋아라고 주머니 속에 손을 넣어 과일을 잡는다. 이 때 고함을 지르며 뛰어나간다. 급한 원숭이는 과일을 쥐고 달아나려 애쓴다. 그러나 원숭이의 손은 과일을 쥐고서는 빠져 나오지 못한다. 과일을 놓으면 쉽게 손이 빠지는 데도 놓지 않는다. 과일을 쥐고 달아나려다 원숭이는 결국 잡히고 만다.
너의 등번호는 남겨둘게
182㎝의 트레이시는 브랜든 대학교 여자 농구부의 촉망받는 선수였다. 지난 1993년 1월의 일이었다. 다른 대학과의 경기가 있던 그 날도 트레이시는 유감없이 자신의 실력을 발휘했다. 그런데 경기가 끝나갈 무렵 트레이시가 슛을 하고 바닥에 오른발을 내딛는 순간 갑자기 그녀는 경기장이 울릴 정도의 비명을 질렀다. 무릎뼈가 충격으로 으스러진 것이었다. 즉시 병원으로 옮겨진 트레이시는 몇 시간의 대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의사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그 후 트레이시는 3개월에 걸쳐 아홉 번의 수술을 받았다. 의사들은 트레이시의 오른쪽 다리를 살리기 위하여 뼈를 이식하고 살을 옮기는 필사의 노력을 했으나 이식된 뼈와 살은 제기능을 다하지 못했다. 결국 다리를 잘라야 했다. 절단 수술 전날 농구팀 감독이 트레이시를 찾아왔다. 트레이시는 애써 밝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트레이시, 너의 등번호인 10번은 네가 돌아올 때까지 남겨두겠다.”
감독의 말에 트레이시가 대답했다.
“감독님, 꼭 팀에 복귀하겠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트레이시의 부모들은 트레이시를 위로하기 위한 말쯤으로 생각했다. 3개월 후, 브랜든 대학교 농구부의 첫연습이 있던 날, 농구장에 가장 먼저 나타난 사람은 연습가방을 어깨에 맨 트레이시였다. 그녀는 오른쪽 무릎 아래 의족을 끼고 있었다. 이윽고 선수들이 집합하자 감독이 선수들의 연습조를 불러주었다.
“트레이시! 너는 1번 조다!”
감독은 전력질주만 뺀 나머지 모든 연습에 트레이시를 참가하게 하였다. 다리를 절단한 뒤 4개월만에 트레이시는 첫 경기에 참가하였다. 이 날 그녀는 12점을 득점하고 6개의 리바운드를 잡아냈다. 다리를 절단하기 전보다 훨씬 좋은 성적이었다. 그녀의 등 번호는 여전히 10번이었다.
눈 먼 벌치기
아이들 학교 때문에 춘천으로 이사온 박광호 씨는 가리산에 두고 온 벌통이 눈에 어른거린다. 벌들은 어릴 때 눈이 먼 박광호 씨의 이제까지의 삶을 지탱해온 버팀목이었다. 박광호 씨는 소양강에서 한참이나 안으로 들어간 첩첩산중 가리산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얼마 후 벌목장에서 일하던 아버지마저 사고를 당해 두 다리를 잃고 말았다. 죽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아버지가 살아있으니 살아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한 광호는 성한 사람도 하기 어렵다는 벌치기를 이웃집 벌치기 노인으로부터 배웠다. 뒷산에 지천으로 핀 꽃들 사이로 벌들이 날아다니면서 꿀을 벌통으로 모았다. 그러는 사이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2백만원만 있으면 눈을 뜰 수 있다는 서울 의사의 말에 2년 동안 부지런히 돈을 모아 달려갔지만 그 동안 그의 시신경은 이미 말라 수술이 불가능해졌다. 광호 씨는 가슴을 뜯으며 울부짖었다. 그러던 어느 날 광호 씨는 천사와 같은 아내를 만났다. 서울 가리봉동에서 미용사로 있던 아내는 솜씨 좋은 눈먼 벌치기 청년의 사연을 라디오에서 듣고 가리산을 찾아온 것이었다. 그러나 광호 씨의 눈이 되어 평생 밥을 지어주겠다던 그녀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셋째 아들을 낳다가 죽고 말았다. 광호 씨가 아내를 묻고 집으로 돌아오자 방안에는 이제 갓 태어난 아기와 두 살, 세 살인 딸아이가 울고 있었다. 광호 씨는 더듬더듬 아이들을 안고는 큰 소리로 울었다.
광호 씨는 부지런히 벌을 쳤다. 아이들은 무럭무럭 잘 자랐다. 앞을 볼 수 없는 광호 씨는 혹 아이들이 화상을 입을까봐 상에는 뜨거운 음식을 올려놓지 않았다. 어느 땐 둘째 아이는 안고 막내는 업고 해서 길을 가다 황소를 지팡이로 건드려 죽을 뻔한 일도 있었다.
손끝의 감각만으로 벌을 쳐온 지 16년여, 세월은 큰애가 중학교에 다닐만큼 빠르게 흘렸다. 눈먼 아비가 정성으로 키운 아이들은 흉터 하나 없이 너무나 곱게 자랐다.
일으켜 세워준 여왕
전 캐나다 수상 피에르 트뤼도의 부인인 마거리트는 남편을 따라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 중에서 마거리트 여사가 오래도록 잊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바로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였다.
어느 해 캐나다 수상 부부가 영국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었다. 여왕을 찾아 뵙기 위해 수상 부부는 수십 명의 수행원들을 이끌고 왕궁으로 향했다. 마거리트는 한 나라를 대표하는 수상의 부인으로서의 당당함을 보여주기 위해 최신 유행의 옷을 차려입고 굽이 아주 높은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차안에서 마거리트는 이상한 초조감에 어쩔 줄 몰랐다. 초조함은 왕궁에 들어설 때까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근엄하면서도 인자해 보이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미소를 지으며 수상 부부를 맞았다. 트뤼도 수상이 먼저 여왕이 내민 손을 맞잡았다. 수상은 여왕에게 부인 마거리트를 소개했다. 마거리트의 가슴은 마구 쿵쾅거렸다. 마거리트는 예를 갖추기 위해 왼발을 뒤로 물리고 무릎을 굽혀 인사를 한 뒤 여왕의 손을 잡았다. 그런데 그 다음 마거리트가 일어서려고 했지만 다시 일어설 수가 없었다. 높은 굽 탓이었는지 무릎이 삐끗한 것이었다. 주위엔 양국의 정치인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기자들의 카메라는 쉴새없이 찰칵거렸다. 당황한 마거리트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런데 위기를 대충 짐작한 여왕이 마거리트의 손을 꽉 잡았다. 그리고 오른 팔의 근육에 온 힘을 모아 마거리트를 끌어 당겼다. 그러면서도 여왕의 표정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으며 시선 역시 흐트러짐이 없었다. 마거리트는 여왕이 손을 잡아준 덕분으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똑바로 일어설 수 있었다. 여왕은 영국에 온 것을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말하고는 인자한 미소로 마거리트를 쳐다보았다. 그 날 마거리트가 실수할 뻔한 일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황야의 코미디언
미국의 대표적인 코미디언 봅 호프, 어린 시절 지독한 가난 때문에 마을에 들른 극단을 무작정 따라 나선 봅은 이 후 코미디언으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봅은 이 세상에서 사람을 웃음 짓게 만드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다는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은 어디든지 달려갈 정도로 부지런했다. 그곳이 아무리 멀리 떨어졌어도, 혹은 총탄이 오가는 전쟁터일지라도 봅은 마다하지 않았다.
어느 해 봅은 영국에서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을 위한 공연을 하게 되었다. 수천 명의 군인들은 봅의 재치와 유머스런 몸짓에 웃음을 터뜨리며 잠시 전쟁의 시름을 잊었고 애잔한 고향 생각에 눈물을 짓기도 하였다. 그 때 봅의 공연을 보기 위해 황야를 가로질러오는 부대가 있었다. 6백여 명의 군인들은 봅의 공연장을 향해 터벅터벅 걸었지만 끝내 되돌아가야만 했다. 공연시간이 지난 데다가 피곤에 지친 군인들이 그 먼 거리를 걸어오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공연이 막바지에 접어들 무렵 우연히 이 소식을 들은 봅은 군인들의 박수 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부랴부랴 짐을 챙겼다. 단원들을 태운 버스는 황야로 들어섰다. 봅의 눈앞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터덜터덜 걸어가는 군인들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그런데 한 두 방울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이내 세차게 비가 쏟아졌다. 그래도 봅은 멈추지 않았다. 얼마나 갔을까. 폭우 속에서 희미하게 움직이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였다. 봅이 뒤쫓아 간 부대였다. 순간 봅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봅은 군인들을 향해 멈추라는 뜻의 경적을 울렸다.
다시 공연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6백여 명의 군인들을 위한 것이었다. 세찬 비가 얼굴을 때렸지만 봅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군인들의 얼굴엔 눈물과 빗물이 섞여 흘러 내렸다. 비가 쏟아지는 거친 황야에는 끝없는 웃음소리가 메아리치고 있었다.
누가 자랑 좀 해주소!
지난 여름의 일이다.
퇴근길이라 사람들은 지쳐 보였고 날씨도 여름이라 몹시 덥고 장마비까지 내리고 있었다. 버스가 한 정거장 두 정거장 지나 통도사 입구에서 할머니 한 분이 타셨다. 그 할머니는 통도사 근처에서 장사를 하시는 듯 머리에는 당신보다 더 큰 봇짐을 이고 있었다. 그러자 기사 아저씨가 “할머니 수고 많으십니다” 하고 정겹게 얘기를 건넸다.
버스 안은 이미 만원이었으나 마침 운전사 바로 뒷좌석이 비어 할머니는 지친 다리를 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할머니는 누가 듣지도 않는 얘기를 계속하셨다. 집에는 아무도 없이 병든 아들이 두 명이 있고, 돈이 없어 할머니가 직접 봇짐으로 장사를 다니는데 오늘은 너무 장사가 안됐다고 신세한탄을 하셨다.
그 투정 아닌 투정을 기사 아저씨는 싫은 표정 하나 지으시지 않고 연신 “할머니가 고생 많습니다” 하시며 이야기를 끝까지 들으셨다. 그리고 할머니가 내릴 준비를 하자 기사 아저씨는 꼬깃꼬깃 접은 만원짜리 한 장을 주머니에서 꺼내 할머니 손에 쥐어주셨다.
“할머니, 요기나 하십시오.”
“기사 아저씨, 이러면 안됩니다.”
할머니가 펄쩍 뛰시자 아저씨는 그러면 목적지에서 내릴 수 없다는 엄포(?)를 놓으셨다. 할머니는 끝내 눈시울을 붉히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손님들, 누가 TV에 이 아저씨 자랑 좀 해주소. 난 무식쟁이라 글도 모르고 전화도 못하요. 좀 부탁합시다. 예!”
그 날, 버스 운전사 아저씨의 모습은 한여름 장대비 만큼이나 시원한 것이었다.
잊을 수 없는 선생님
왓슨 선생님은 6학년 과학을 가르치셨다. 선생님은 첫날 수업시간에 우리에게 주위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빙하기에 멸종된 캐티 웜퍼스라는 동물에 관해 말씀하셨다. 선생님은 캐티 웜프스의 두개골을 보여 주셨고 우리는 요점을 학습장에 기록했다. 그리고 나중에 간단한 시험을 치렀다.
선생님에게서 답안지를 받아본 나는 깜짝 놀랐다. 영점이었다. 시험에 실패한 것이다. 뭔가 착오가 있었음에 틀림없었다. 나는 왓슨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정확하게 답을 적어 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우리 반 학생 모두가 영점을 받은 것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왓슨 선생님은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셨다. 캐티 웜프스에 관한 얘기는 모두 꾸며낸 이야기라는 것이었다. 그런 동물은 있은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필기한 내용은 틀린 지식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우리는 분개했다. 뭐 이런 시험이 다 있어? 무슨 선생님이 이래?
“나는 캐티 웜프스의 두개골(사실은 고양이의 두개골)을 돌리면서 너희들에게 이 동물의 흔적은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그 동물의 놀라운 시력과 털의 색깔, 주로 먹는 음식 등 나도 알지 못하는 사실을 얼마나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던가? 또 그 동물의 우스꽝스러운 버릇도 설명해주었었다. 그런데도 너희들은 여전히 의심을 하지 않았다. 너희들의 잘못이다. 시험점수는 영점이다.”
왓슨 선생님은 그렇게 설명하셨다.
왓슨 선생님은 우리가 이 경험으로부터 뭔가를 배우기를 바란다고 하셨다. 선생님은, 교과서가 절대로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사실 절대로 확실한 것은 없다는 말씀이었다. 선생님은 우리가 마음을 잠재우지 말고, 선생님이나 교과서가 틀렸다고 생각되면 언제든지 떳떳하게 주장하라고 일러주셨다.
나는 지금도 그 날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 사람
“제게는 아들녀석이 하나 있는데 아주 개구장이죠. 그러나 녀석이 어찌나 마음이 여린지 조금만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으면 미모사처럼 대번 달라지는 거예요. 그 애는 매일 아침 학교에 가는 길에 철도 건널목에서 새벽열차가 지나가는 것을 기다린답니다. 그리고는 팔이 빠져라 손을 흔드는 거죠.”
“아, 그래요? 그리고요?”
얼굴이 검고 인상이 좋지 않은 사내가 자기 목발을 만지면서 관심을 보였다.
“그러고 나서 학교로 가는데······ 집에 돌아와서는 멍청하니 앉아 운다니까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제 몸만 축이 나지.”
“왜 그럽니까?”
“······ 그애는 매일 손을 흔들지만 승객들은 아무도 마주 흔들어주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 애로서는 가슴 아픈 일이지요.”
“그래서 댁이 내일 새벽 차를 타고 손을 흔들어 아들의 마음을 달래주려고 이 기차를 탔습니까?”
“휴, 그렇습니다.”
기차가 기적을 두어 번 올리더니 작은 역에 섰다. 남자가 일어섰다. 목발을 가진 사내가 피곤한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나는 아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잘 해보세요.”
하지만 남자는 다음날 새벽기차를 타지 못했다. 어쩐 일인지 늦잠을 자고 말았던 것이다. 죄책감에 힘없이 집으로 돌아 왔을 때, 남자는 아이가 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아이는 생기가 넘치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버지, 어떤 아저씨가 오늘 손을 흔들어 주었어요! 얼마나 오랫동안 흔들었다구요. 나중에는 작대기 같은 것에 손수건을 매어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흔들어 주었어요.”
공부를 하는 까닭
공자의 제자가 스승에게 물었다.
“왜 힘든 공부를 해야 하나요?”
공자가 대답했다.
공부란 태평할 때 군인이 칼을 가는 것과 같다. 태평할 때 칼을 갈아두지 않으면 갑자기 적군이 쳐들어 온 후에 칼을 갈 수는 없다. 공부도 앞으로 닥칠 세상살이에 미리 슬기롭게 대처하자는 것이다.
또 공부는 농부가 농사철이 닥치기 전에 우물을 파고 둑을 쌓고 농기구를 마련하는 것과 같다. 한가한 겨울철에 미리 우물을 파놓으면 가물어도 논밭에 물을 대고 사람도 물걱정을 하지 않게 된다. 또 강가에 둑을 튼튼히 쌓으면 장마가 닥쳐도 걱정이 없다. 농기구를 미리 준비하면 봄에 삽과 괭이로 논밭을 갈아 씨앗을 뿌리고 호미로 김을 매고 낫으로 곡식을 거두어 큰 풍작을 맞을 수 있다.
또한 공부는 어부가 항구에서 배와 그물을 손질하고 식량과 연료를 준비하는 것과 같이 미리 사회 생활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공부에는 때가 있다. 어려서 기회를 놓치면 돌이키기 어렵다.
턱을 더 들어!
옛날 소련의 한 작은 마을에 기독교를 몰래 전파하는 목사가 있었다. 종교가 금지되고 있던 당시 목사는 감시 대상이었다. 그러다 그만 경찰에 들키게 되어 목사는 정치범만 수용되는 시베리아로 보내졌다.
목사에겐 같은 마을에 사는 절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이발사인 그는 목사의 소식을 듣고 매우 슬퍼했다. 결국 목사 친구가 너무나 걱정이 된 그는 친구를 따라 시베리아로 무작정 떠났다. 그리고 수용소에 일자리를 구했다. 거기에 있다보면 언젠가는 목사와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이발사는 믿고 있었다. 이발사의 일은 죄수들의 머리를 깎아주는 것이었다. 감시가 심했기 때문에 이발사는 죄수들과 자유롭게 얘기를 나누지 못했다.
그러는 가운데 몇 주가 흘렀다. 여느 때처럼 죄수들의 머리를 깎기 위해 대기실로 들어온 이발사는 놀랐다. 거기에는 덥수룩한 머리의 목사가 앉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서로의 눈빛만 쳐다볼 뿐 아무런 말도 나눌 수 없었다. 목사의 머리를 자르기 시작한 이발사의 손은 가늘게 떨렸다. 목사에게 이발사가 할 수 있는 말은 고작 머리를 고르게 자르기 위하여 고개를 들라는 주문뿐이었다.
“이봐, 턱을 들어.”
이발사는 다시 한번 힘주어 말했다. 러시아 말로 ‘힘 내!’라는 관용적 뜻이 숨어 있는 이 말을 듣고 목사는 새로운 용기를 얻었다.
‘고맙네 친구, 턱을 빳빳이 들고 이 무서운 곳에서 꼭 살아 남겠네.’
이발사는 목사가 풀려날 때까지 3년 반 동안 수용소에서 그 일을 계속했다. 비록 몇 개월에 한번씩 이루어진 만남이었으나 그 때마다 이발사는 목사에게 말했다.
“이봐, 턱을 더 들어!”
그러면 목사는 턱을 들면서 이발사의 눈빛을 슬쩍 바라보았다.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도끼를 잃은 사람
어떤 사람이 도끼를 잃어버렸다. 그 도끼는 푸른 날이 선, 아주 성능이 좋은 것이었다.
나무를 할 때 이 도끼는 매우 잘 들어 사람들이 부러워했다. 그런데 바로 그 도끼를 잃어버린 것이다.
여기저기 찾아보았으나 도끼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 사람은 옆집 아이가 왠지 의심스러웠다. 자기가 도끼를 잃어버리고 난 뒤부터 옆집 아이는 자기를 보고 인사도 잘하지 않고 슬슬 피하는 것이 아닌가! 길 걷는 모습도 왠지 불안했다. 뭔가 죄를 짓고 눈치를 보는 듯했다. 음성도 떨려 나오는 것 같았다. 물론 증거는 없었다. 하지만 아이의 얼굴이 명확한 증거라고 생각했다.
‘저 아이가 내 도끼를 훔쳐 간 것이 틀림없어. 어떻게 혼내줄 수 없을까?’
그 남자는 매일 아이의 거동을 살펴보았다. 범인은 바로 그 아이라는 생각이 더욱 굳어졌다.
그러나 그 후 얼마 안 되어 그는 잃어버린 도끼를 찾아냈다. 산에 가서 나무를 하다가 조심하지 않고 도끼를 산에 두고 왔던 것이다.
도끼를 찾은 다음 날 그는 또 옆집아이와 만나게 되었다. 그가 다시 이모저모 살펴보았더니 이번에는 모든 것이 달라져 보였다. 길 걷는 모양이나 말하는 음성 할 것 없이 그 일거일동이 물건을 훔친 사람 같지 않게 보였다. 물론 그 아이는 그전과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이 없었지만.
나는 받지 않았다
부처님께서 살아 계실 때의 일이다. 한 건달 같은 남자가 어느 날 부처님에게 찾아와 마구 욕설을 퍼부었다. 건달 같은 남자의 욕을 모두 다 듣고 난 부처님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대에게 묻는다. 만일 어떤 손님이 그대를 찾아왔을 때 그대가 손님에게 음식을 주었는데, 그 손님이 음식을 받지 않는다면 그 음식은 누구의 것이겠는가?”
건달 같은 남자가 대답했다.
“물론 제 것입니다.”
그러자 부처님은 은은한 목소리로 이렇게 이르셨다.
“그와 똑같다. 네가 내게 욕설을 퍼부었지만 나는 그것을 받지 않았으니 그 욕설은 여전히 네 것이니라.”
“?”
건달 같은 사내는 무릎을 꿇고 부처님께 잘못을 빌었다.
알게 뭐야
두 대의 트럭이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밀가루를 싣고 빵공장을 향해 가는 차와 시멘트를 싣고 벽돌 공장으로 가는 차였다.
가다 보니 오줌이 마려웠다. 두 차의 운전기사는 같은 시간에 휴게소에 들러 화장실에 갔다. 한 사람이 먼저 나와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다른 사람도 나와 차에 올랐다. 그런데 이상했다. 아까 그 차가 아닌 듯했다. 그 사람은 중얼거렸다. “알게 뭐야.” 다른 운전사도 차가 바뀐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도 중얼거렸다. “알게 뭐야.”
밀가루를 실은 트럭은 벽돌 공장에, 시멘트를 실은 트럭은 빵공장에 도착했다. 벽돌을 만드는 사람은 밀가루를 물에 풀어 벽돌을 찍으며 중얼거렸다. “이 시멘트는 꼭 밀가루 같군. 하지만 알게 뭐야.”
빵공장에서도 빵을 굽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색깔이 시커메졌다. 빵 만드는 사람은 중얼거렸다. “알게 뭐야.”
밀가루 벽돌은 집짓는 곳으로 옮겨졌다. 시멘트 빵은 빵집을 거쳐 집집마다 배달되었다. 이윽고 “우르르, 폭삭” “와지직” “아야” “앙앙”
집은 무너졌다. 사람들은 이를 다치고, 배를 움켜쥐었다.
피에로
옛날 아라비아의 어느 마을에 왕에게 여러 해 동안 시중들고 있던 피에로가 있었다. 그러나 이 피에로는 어느 날 궁전에서 왕을 화나게 만들었다.
왕은 피에로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피에로는 왕이 어렸을 때부터 궁전에서 일해 왔었기 때문에 왕은 마지막 자비를 베풀었다.
“알라신도 나도 자비심이 깊으니라. 내가 어렸을 때부터 너는 착실히 나를 웃기려고 열심히 노력해 왔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소원을 들어주도록 하겠노라. 너는 어떻게 죽는 것이 좋을지 네 소원대로 죽는 방법을 택하도록 하여라.”
왕은 조그마한 모래시계를 거꾸로 돌려놓고 “이 모래가 다 흘러내릴 때까지 생각해서 대답하도록 하라.”
피에로는 모래시계가 마지막 다 흘러내릴 때까지 줄곧 아무 말도 없었다. 그래서 최후의 모래가 밑의 유리 상자 속에 떨어지자 왕이 물었다.
“자. 이제 마음은 결정되었는가?”
“예. 정해졌습니다. 저는 늙어서 죽는 쪽을 희망합니다.”
콜럼버스의 달걀
항해가이며 탐험가인 콜럼버스는 신대륙 아메리카를 발견한 사람입니다. 그는 이런 일화를 남겨 놓았습니다. 탐험에 성공하고 돌아온 콜럼버스는 날마다 축하 잔치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콜럼버스의 이름이 높아지자, 그것을 시기하고 언짢게 여기는 사람이 생겨났습니다.
어느 날,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 모인 잔치에 참석했을 때의 일입니다. 한 사람이 일어나서 말했습니다.
“대서양을 서쪽으로 자꾸 가서 새 섬을 발견한 것이 그렇게 대단한 공로일까요? 당신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요?”
그러자, 화가 난 콜럼버스는 탁자 위에 놓은 달걀을 집어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외쳤습니다.
“여러분, 누구든지 좋습니다. 이 달걀을 탁자 위에 세울 수 있습니까?”
사람들은 콜럼버스의 말을 듣고 모두 세워 봤습니다. 그러나 실패였습니다.
“못하십니까? 그럼 제가 해 보겠습니다.”
콜럼버스가 말을 끝내고 달걀 끝을 탁자에 톡톡 쳤습니다. 달걀 껍질이 깨졌습니다. 그는 깨진 쪽이 밑으로 가게 해서 세웠습니다. 달걀은 꼼짝도 안하고 서 있었습니다.
“이렇게 세우는 것은 남이 하고 난 다음에는 쉽습니다. 그러나 처음으로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제가 탐험한 것도 이처럼 처음 한 일이라 쉽지 않습니다. 이제 대답이 되겠습니까?” 콜럼버스가 빙그레 웃으면서 조용히 의자에 앉았습니다. 이제는 아무도 그를 우습게 보지 않았습니다.
내일도 날
몹시 게으른 농부가 있었다. 남들은 들에 나가 일을 하는데도 집안에서 빈둥거리고, 어쩌다 밖에 나가서도 남의 논두렁이나 돌아다니며 말참견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농부가 농사철을 놓치면 가난을 면하기 어려운 법이어요. 날씨도 청명하니, 내일은 제발 논갈이를 합시다.”
이튿날 아침 일찍 밥을 먹은 농부가 들에 나가려고 쟁기를 챙기는데, 이웃 친구가 찾아와서 강에 고기를 잡으러 가자고 했다.
“어허, 이거 곤란하군. 논갈이를 해야 하는데.”
“여태 가만있다가 하필이면 오늘 논갈이를 하려고 그러나. 기왕 늦었는데, 내일로 미루고 같이 가세.”
원래 놀기 좋아하는 성미인지라, 두어 번 권하자 그만 따라 나서고 말았다.
그 날 강가에 가서 마신 술 탓으로 농부는 이튿날 종일토록 드러누워 있었다.
“내일은 꼭 논갈이를 해야지!”
그러나 공교롭게도 이튿날 비가 쏟아졌고, 또 다음 날은 소가 병이 나서 쟁기를 지울 수가 없었다. 게다가 가까운 집에 초상이 나서 다시 내리 닷새를 허비하고 마니, 마침내 모든 시기를 놓친 셈이 되고 말았다.
겨우 부랴부랴 논을 갈아서 모내기를 했으나, 이미 적기를 놓친 파종이기 때문에 소출이 평년작의 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이듬해 봄에 춘궁기가 오기도 전에 그의 집은 식량이 떨어져버렸다.
승자와 패자
승자는 실수했을 때 "내가 잘못했다"말한다. 패자는 "너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과 말한다. 승자의 입에는 정직이 가득하다. 패자의 입에는 핑계뿐이다. 승자는 "예"와 "아니오"가 확실하나, 패자는 적당히 어물거린다. 승자는 어린이에게도 겸손하지만, 패자는 노인에게도 고개를 못 숙인다. 승자는 넘어지면 일어서서 자기를 살피나, 패자는 넘어지면 돌부리를 원망한다.
승자는 바쁘게 일하지만 시간에 여유가 있고, 패자는 게으르기
때문에 항상 바삐 쫓긴다.
승자의 하루는 25시간이고, 패자의 하루는 24시간밖에 안된다.
승자는 열심히 일하고 유쾌히 놀고 편안히 쉰다. 패자는 허겁지겁
서둘고 빈둥빈둥 놀며 흐지부지 쉰다.
승자는 시간을 관리하며 살고, 패자는 시간에 끌리어 산다.
승자는 시간을 붙잡고 달리나, 패자는 늘 시간에 쫓겨 다닌다.
승자는 문제속으로 뛰어들고, 패자는 문제의 변두리에서만 맴돈다.
승자는 눈이 쌓이면 길을 만들고, 패자는 그 눈이 녹기를 기다린다.
승자는 무대위로 뛰어 올라가나, 패자는 객석에서 구경만 한다.
승자는 실패를 거울로 삼고, 패자는 성공을 휴지로 삼는다.
승자는 돈을 다스리고, 패자는 돈을 낭비한다.
독수리
어떤 사람이 독수리 알을 발견하여 자기 집 뒤 뜰 닭장 안에 갖다 놓아더니, 독수리 새끼가 다른 한 배 병아리와 함께 알을 까고 함께 자랐다. 일생 내내 이 독수리는 닭이 하는 짓을 하며 스스로 닭이라고만 여겼다. 땅바닥을 긁어 벌레를 잡아먹고, 꼬꼬택…… 꼬끼오… 하고 소리를 내며, 날개를 푸드덕거려 공중으로 두어 자씩만 날곤 했다. 닭이란 그런 모양이로 날게 돼 있으닌까, 그렇게 날아야 닭다울 테니까. 세월이 가고, 독수리는 매우 늙었다. 어느날 무심코 쳐다보니, 멀리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큼직한 새가 떠돌고 있었다. 그것은 튼튼한 금빛 날개를 좀처럼 퍼덕이는 일조차 없이, 세찬 바람결 속에서 우아하고도 위풍 당당한 모습이었다. 늙은 독수리는 경외심 가득하여 바라보며 옆에서 모이를 쪼고 있는 닭에게 물었다. "저분이 누구지?" "저분은 새들의 왕이신 독수리님이야." 닭이 말했다. "하지만 엉뚱한 생각일랑 집어 치워!1 너나 나나 그분과는 다른 신분이니." 이리하여 독수리는 아예 딴 생각일랑 하지 않았고, 끝까지 자기는 닭이라고 여기다가 죽었다.
침묵의 힘
"20세기의 슈퍼 스타가 누구일까. 나는 간디라고 생각한다. 간디가 젊은시절에 몇 번 인가 옥고를 치른 남아프리카의 감옥의 사진이 나온다. 그가 읽고 깊은 감명을 받은 여러 책들이 나온다. 톨스토이와 주고 받은 편지가 나온다. 그가 발간한 기관지 <인도의 여론>과 <젊은 인도>의 사진이 나온다. 젊은 네루와 간디가 서로 얘기를 주고 받는 광경은 가장 인상에 남는다. 그것은 거인과 거인의 깊은 만남이다. 나에게 가장 충격적 감명을 준 것은 [소금의 행진]의 광경이다. 영국이 인도에서 강요한 소금 전매법에 항거하기 위하여 1929년 60대의 늙은 간디는 오른손에 긴 지팡이를 짚고 수천 명의 대중의 선두에 서서 맨발로 천리 길을 행군한다. 그의 옆에는 그를 사숙(私淑)한 인도의 여류 시인 나이두 여사가 줄곧 간디를 수행한다. 수천 명의 남녀 노소로 구성된 인도의 민중이 하얀 옷을 입고 이마에 땀을 흘리면서 간디의 뒤를 따라가고 있다. 그것은 대중과 지도자가 혼연일체를 이룬 장관이다. 진실고 비폭력의 성자 간디는 매 월요일을 침묵의 날로 정하고, 이 날만은 아무 하고도 얘기를 하지 않았다. 얘기해야 할 때에는 필답으로 하였다. 그는 한 주일의 하루는 완전한 침묵과 깊은 명상과 골돌한 사색으로 보냈다. 모든 위대한 모든 것은 침묵 속에서 탄생한다. 깊은 사상, 깊은 신앙, 깊은 철학, 깊은 종교는 침묵의 산물이다. 침묵은 위대한 것을 잉태하는 창조적 원천이다. 우리는 간디에서 침묵을 배워야 한다. 마음을 정화시키고 자세를 가다듬고, 깊은 침묵속에서 자아침잠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산과 같은 침묵을 배우자. 바위와 같은 침묵을 본받자. 대지와 같은 침묵 속에 잠기라. 간디가 60세의 고령으로 천리 길을 맨발로 주파해내는 그 위대한 정신력은 어디서 나왔는가. 나는 침묵의 소산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진실과 비폭력의 정신은 깊은 침묵의 산물이다."
<안병욱님의 처음을 위하여 마지막을 위하여 중에서 >
탐욕의 화신
한 늙은 성자가 여행을 하는 도중에 두 사람의 여행자를 만나게 되었다. 한 사람은 탐욕스럽고 욕심많은 심술쟁이였고, 다른 사람은 시기심이 많고 질투심이 많았다. 그 성자는 그들과 헤어지면서 그들에게 선물을 주기로 약속했는데, 먼저 원한 사람의 소원이 성취되면 다른 사람은 그것의 두 배를 얻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 탐욕스런 사람은 그가 원하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소원을 말하는 것이 두려웠다. 왜냐하면, 그는 두 배의 몫을 차지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의 친구가 자기의 두 배를 얻는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시기심이 많은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둘은 모두 다 서로 다른 사람이 먼저 소원을 말하기를 기다리게 되었다. 결국, 그 시기심 많은 사람은 먼저 말하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동료의 협박에 의해 먼저 말하게 되었다. "좋아, 그렇다면 내가 먼저 소원을 말하지. 나의 소원은 한 눈이 실명되는 것이야." 즉시 그의 한 눈이 멀었고 그의 동료는 양눈이 멀게 되었다.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에 이른다는 성서의 구절이 실감나는 이야기이지요.
황금낟알
한 거지가 마을로 구걸을 떠났다. 이집 저집 기웃거리며 구걸을 하던 그는 어느
거리에서 황금마차를 만나게 되었다. 화려하게 치장을 한 황금마차가 너무나 눈이
부신 나머지 거지는 잠시 머뭇거리며 서 있었다. '이 마차를 탄 사람은 누구일까?
분명 왕중의 왕일테지…….' 거지의 마음은 희망으로 부풀어 올랐다. 그는 이제
불행은 끝이라고 생각하고는 왕이 그의 구걸을 면하게 해줄 많은 보물들을 줄
것이라고 기대하였다.
이윽고 마차가 멈춰서고 왕이 마차에서 내렸다. 왕은 거지를 부드러운 눈길로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거지는 '이제 내 인생에 드디어 행운이 왔다'라고
마음속으로 소리치며 몹시 기뻐하였다. 그 때 갑자기 왕이 오른손을 내밀더니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는 나에게 무엇을 줄 것이뇨"?
거지는 순간 왕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구걸하는 거지에게 무엇을 달라는 말씀입니까? 진정 당신은 지금 농담을 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얼떨떨하게 서 있던 거지는 주섬주섬 주머니를 뒤졌다. 그의 자루에는 마을에서
구걸한 얼마의 돈과 물건들이 들어 있었지만 그는 주머니에서 작디작은 곡식의
낟알 한 개를 꺼내어 왕의 손에 올려 놓았다. 왕은 부드러운 미소를 띄우며 그
곡식 알갱이를 소중히 쥐어들고는 저만치 사라졌다.
날이 저물어서야 집으로 돌아온 거지는 하루종일 구걸한 물건이 가득한 자루를
마루 위에 털어 놓았다. 그런데 그 초라한 무더기 가운데 무언가 반짝거렸다.
거지가 자세히 보니 그것은 낮에 만난 왕에게 준 낟알이었다. 그 낟알은 반짝반짝
빛나는 황금 낟알로 변해 있었다. 거지는 너무나 놀라 바닥에 털썩 주저 앉았다.
그리고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아! 왕에게 나의 전부를 바칠 마음을 지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최선을 다하는 삶은 아름답습니다.
독일의 서정시인인 릴케(R.M.Rilke)가
무명이었을 때의 일화입니다.
하루는 저녁 늦게 공원 옆을 지나가는데
울타리에 기대앉아
통행인들에게 구걸하는 노파가 있었습니다.
릴케는 불쌍한 마음이 들어
그 노파에게 동전을 주기 위하여
주머니를 뒤져 보았지만 자신도 가난한
처지인지라 주머니엔 동전 한 푼 없었습니다.
그래서 릴케는 화단에 피어있는
장미꽃 한 송이를 꺽어 정성어린 마음으로
노파의 무릎 위에 놓아 드렸습니다.
불행과 슬픔의 삶을 살면서 어느 누구에게도
인간다운 대접을 받아보지 못하고
살아온 노파는 한 없는 감동으로 몸을 떨면서
자신을 한 인간으로 대해준
젊은이의 손을 붙잡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그 노파는 장미꽃을 들고
천천히 공원을 걸어갔습니다.
돈이 아닌 마음을 선사 받은 노파는
세상이 새롭게 보였습니다.
릴케가 가졌던 사랑의 마음은 오늘도 소외당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성품인 것입니다.
이 순간
시계만을 평생 만지며 살아온 시계방 주인이 있었다.
이 시계방 주인이 자기 아들한테 주기 위해 시계를 만들었다.
시계방 주인은 아들한테 줄 시계의 초침을 황금으로 빚었다.
그리고 분침은 은으로, 시침은 동으로 하는 게 아닌가.
곁에 있던 그의 아들이 물었다.
"아버지. 시침을 황금으로 하고, 분침을 은으로,
그리고
초침을 동으로 빚어야 하지 않은가요?"
시계방 주인이 대답했다.
"아니다. 초침이 가는 것이야말로 황금의 길이다.
초를 허비하면 황금을 잃는 것이야."
시계방 주인은 계속해서 말했다.
"그리고 분침이 가는 것은 은이 가는 길이다.
분을 아끼는 사람은 그나마 은 정도는 모으게 돼."
"하지만 시침을 가지고 말하는 사람은 3등밖에 하지 못한다."
그의 아들이 대꾸했다. "아니, 초가 모여서 분이 되고, 분이 모여서 시간이
되는데 어떻게 그렇게 등급이 나뉠 수 있지요?"
시계방 주인이 말했다.
"네가 말한 것은 시간의 공식일 뿐이다. 초를 아끼지 않는 사람안테 어떻게
분이 있을 수 있으며 시간이 있을 수 있겠느냐? 내가 말한 것은 시간 소비에
대한 등급이다."
시계방 주인은 아들의 손목에 황금 초침 시계를 채워주면서 말했다. "이
세상의 변화는 초침에 맞추어지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동과 은과 금의
나뉨은 초를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야."
친구여 거문고의 현을 끊네
옛날 중국에 백아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거문고 타는 솜씨가 뛰어났다.
그는 친구 중에 종자기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백아의 재능을 알아주고
높이 평가했다.
백아가 산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거문고를 탈 때면 종자기는 그 음률을
이해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정말 대단하구나, 마치 태산같이 높이 치솟는 느낌이네."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 친구를 그만큼 깊이 이해하는 사이였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종자기가 세상을 떠났다. 자기를 이해하고
아껴주던 친구를 잃은 백아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백아는 자기가
그토록 아끼던 거문고의 줄을 끊어 버렸다. 자기의 거문고 소리를 들어주고
마음 속 깊이 이해하는 친구를 잃은 슬픔에 겨워 다시는 거문고를 켜지
않았다.
나를 정말 깊이 이해하고 아끼는 친구를 가리켜
지음(知音)이라고 한다. 서로 마음 속 깊이
이해하는 깊은 우정을 가리켜 백아절현(伯牙絶絃
-백아가 거문고 줄을 끊다)이라 하기도 한다.
아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친구가 켜는
음악의 깊이와 의미를 이해하는 그런 친구는
소중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아니 꼭 나의
재능을 이해하지 않더라도 나의 사람됨을 믿어 주고 나의 특성을 이해하고,
내가 가진 장점을 아껴 주는 그런 친구는 없을까.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좋은 친구 한 명 얻기가 쉽지 않다. 내가
누군가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 주기도 힘들다. 그러나 사랑하고 이해하는
친구가 없다면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노라고 어찌 말할 수 있으랴.
업고 씨 뿌리는 사랑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이상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밭에서 씨를 뿌리는
두 사람이 있었는데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업고, 그 업힌 사람은 씨를
뿌리고 업은 사람은 씨 뿌린 자리를 밟고 있었다.
"어째서 당신들은 그렇게 씨를 뿌리고 있습니까.?"
씨를 뿌리던 사람들은 잠시 씨 뿌리는 일을 멈추고 대답했다.
"우리들은 문둥병 환자입니다. 나는 손이 다 오그라들었고 이 사람은 발을
쓸 수가 없지요."
그러면서 두 사람은 다시 씨를 뿌리기 시작했다. 손이 성한 사람이 씨앗을
뿌리면 발이 성한 사람은 그 씨앗을 흙 속에 밟아 넣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한 사람이 할 일을 둘이 힘을 합하여 해나가는 것이었다.
지나가던 사람은 두 사람이 문둥병 환자라는 것에 놀라기보다는 서로
부족한 점을 채워 일을 완성시키는 데 깊은 감동을 받았다.
사랑은 또한 이런 것이 아닐까. 서로 부족한 점을
보완하여 완전하게 만드는 것, 서로의 결점을 서로
감싸 씨 뿌리고 열매 맺는 일이 아니겠는가. 이제
가을이 되어 열매가 무르익으면 두 사람은 업고
업혀 열매를 따서 서로 필요한 만큼 나눠 가질
것이다.
어찌 보면 세상 사람들은 어느 한 구석엔가는
부족한 점을 갖게 마련이다. 내가 저 사람의
부족함을 채우고, 저 사람이 나의 부족함을
채운다면 온전하게 하나의 몫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공수래 공수거
한 나라의 왕이 하루는 신하들을 불러 놓고 유언을 했다.
"여봐라! 내 말을 명심해서 들으렷다.! 내가 죽은 후 내
시신을 거리로 운구할 때, 나의 양손이 밖으로 나오도록
해라. 그리고 밖으로 나온 손은 절대로 덮어서는 아니
되노라."
"……?"
신하들은 모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왕의 유언이 너무도 황당했기
때문이다.
"무슨 말씀 이십니까? 지금 폐하께서 분부하신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몸 전체를 덮는 것이 마땅한데 어째서 폐하께서는 두 손이
밖으로 내보이기를 원하십니까?"
그러자 왕이 대답했다.
"나는 죽어 빈손으로 떠난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알리고 싶구나. 나는
많은 것을 얻었으나 사실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이런 화려한 궁전이 다
뭐란 말인가. 죽어서는 누구나 빈손으로 가는 것을……"
그 왕이 누구일까? 그가 바로 세계를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이다. "
아무리 갑부라 해도 죽을 때는 역시 알렉산더
대왕처럼 빈손으로 간다. 어쩌면 인간의
삶은 길고 긴 꿈과도 같은 것인
지도 모른다. 화려한 꿈이든
보잘것없는 꿈이든
모두 일순간에
사라지고
만다.
"
듣기는 빨리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라
빈틈없고 대담하며 무도한 악당으로, 한편으로는 노련한 전략가이자
정치가로 평가받는 조조, 한때 100만 명이 넘는 대군을 이끈 그도 한번은
적과의 전쟁에서 대패한 적이 있다. 조조의 휘하에 있는 장군들이 모두
죽고 막대한 피해를 입은 군사들마저 뿔뿔이 흩어지자 조조는 홀로 남게
되었다. 간신히 목숨만은 구한 그는 적들의 눈을 피해 도망쳤다. 죽을
힘을 다해 도착한 곳은 그의 친구집이었다. 친구는 쫓기는 조조를 반갑게
맞이하였다. 그리고 대문밖에 나가 주위를 확인한 뒤 뒷방으로 안내했다.
"이보게 여기 있으면 안전할 걸세."
친구가 방을 나간 뒤 조조는 피로에 지쳐 잠에 떨어졌다. 그렇게 한 참이
지난 뒤 조조는 이상한 소리에 슬핏 잠이 깨었다. 슥슥슥 하고 들리는
소리는 마치 칼을 가는 듯 했다. 놀란 조조는 벌떡 일어나 방문에 귀를
가까이 대고 바깥 동정을 살폈다. 숨을 죽이고 있던 조조는 친구가
누군가에게 속삭이는 소리를 듣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잘 갈아야 돼, 한번에 해치워야 하니까."
친구의 나지막한 목소리와 칼 가는 소리가 조조의 귓가를 맴돌았다.
'겨우 목숨을 구했는데 여기서 죽는구나. 믿었던 친구가 나를 죽여 적이
주는 상을 타려 하다니….' 조조는 앞뒤 가릴 것 없이 뛰어나가 그
자리에 있는 친구와 가족들의 목을 단숨에 베어 버렸다.
갑자기 조용해졌다. 정신을 차린 조조는 자기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끔찍하기만 했다. 숨을 몰아쉬며 뒤돌아서려는데 꿀꿀거리는 돼지 소리가
들려왔다. 쓰러져 있는 친구 옆에는 한 마리
돼지가 묶여 있었다. 친구는 조조를 죽이려고
한 것이 아니라 먼길을 찾아 온 친구를 위해
돼지를 잡으려한 것이었다. 조조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아 자신의 속단을 후회하며
통곡하였다.
청춘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그것은 장미빛 빰, 앵두 같은 입술, 하늘거리는 자태가 아니라
강인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는 열정을 말한다.
청춘이란
인생의 깊은 샘물에서 오는 신선한 정신, 유약함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를 뿌리치는 모험심을 의미한다.
때로는 이심의 청년보다 육십이 된 사람에게 청춘이 있다.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우리가 늙는 것은 아니다.
이상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는 것이다.
세월은 우리의 주름살을 늘게 하지만
열정을 가진 마음을 시들게 하지는 못한다.
고뇌, 공포, 실망 때문에 기력이 땅으로 들어갈 때
비로소 마음이 시들어 버리는 것이다.
육십 세이든 십육 세이든 모든 사람의 가슴속에는 놀라움에 끌리는 마음,
젖먹이 아이와 같은 미지에 대한 끝없는 탐구심,
삶에서 환희를 얻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 법이다.
그대와 나의 가슴속에는 남에게 잘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간직되어 있다.
아름다움, 희망, 희열, 용기, 영원한 세계에서 오는 힘,
이 모든 것을 간직하고 있는 한
언제까지나 그대는 젊음을 유지할 것이다.
영감이 끊어져 정신이 냉소라는 눈에 파묻히고
비탄이란 얼음에 갇힌 사람은
비록 나이가 이십 세라 할지라도 이미 늙은이와 다름없다.
그러나 머리를 드높여 희망이란 파도를 탈 수 있는 한
그대는 팔십 세일지라도 영원한 청춘의 소유자인 것이다.
두레박
'두레'는 농사꾼들이 '농번기에 협력하기 위해 이룬 모임'이라는
뜻이고, 그 동사형인 '두레먹다'라는 말은 '여러 사람이 둘러 앉아 먹다',
혹은 '음식을 장만하고 모여 먹다'라는 뜻입니다. 또 두렛일을 하는
'두렛날'이 있고, 여러 사람이 둘러 앉아 먹을 수 있게 만든
'두레상'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두레를 짜서 하는 농사인 '두레농사'라는
것도 있고, '두렛논'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처럼 두레라는 말은 같이 산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서로
어울려 함께 살면서 희로애락을 나누어 가졌고, 그런 공동체를 '두레'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한 마을에는 반드시 한 개 이상의 우물이
있었는데, 그 우물을 '두레우물'이라고 했고, 또 온 동네 사람들이 같이
쓰는 우물의 바가지를 '두레박'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같이 쓰는
바가지'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둘레'라는 것도 원래는
우리들의 고유한 정신 중의 큰 맥을 차지하는 단어인 것입니다.
혼자사는 삶에서 더불어 사는 삶으로 변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전쟁에서
평화로, 분단에서 통일로 가는 길이 아닐까요?
우리는 장작불 같은 거야
먼저 불이 붙은 토막은 불씨가 되고
빨리 붙은 장작은 밑불이 되고
늦게 붙은 놈은 마른 놈 곁에
젖은 놈은 나중에 던져져 활활 타는 장작불
같은 거야
무엇이 생각나십니까?
역사를 바꾼 5분
인도가 영국의 지배를 받던 시절
간디가 회의를 소집하였다. 약속장소에
정확하게 시간을 맞춰 간디가 나타났다.
그런데 그 자리엔 아무도 나와 있지
않았다. 약 5분이 지나서야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침내
사람들이 제자리를 모두 채우고 웅성거리자 간디가 언짢은 목소리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금 여기 모인 사람들은 5분 이상 늦었습니다. 그 5분이 늦는 바람에
인도의 독립도 그만큼 늦어졌다는 것을 아십니까? 5분이란 시간을 그렇게
사사로이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러자 장내는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영국의 군인이자 정치가인
웰링톤도 그 5분간을 매우 소중히 여기고 철저히 시간 관리를 한 사람
이었다. 1815년 엘바섬을 탈출한 나폴레옹이 군대를 일으켰을 때 웰링턴은
영국군을 이끌고 나와 워털루에서 나폴레옹 부대와 맞붙게 되었다. 두
부대는 사력을 다해 싸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승리는 프랑스 쪽으로
기울어갔다. 그러나 웨링턴의 부대는 끝까지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전세는
아주 팽팽했다. 그 때 영국과 프랑스는 웰링턴과 나폴레옹을 도와주기 위해
각각 지원부대를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영국과 프랑스의 지원부대들은 각기 다른 방면에서 워털루로 향했다.
웰링턴과 나폴레옹은 자국의 지원부대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다. 워털루에
먼저 도착한 부대는 영국군 지원부대였다. 그들은 초조해하는 프랑스군을
격파하기 위한 충분한 사기와 힘을 갖고 있었다. 한참 후에 프랑스
지원부대가 나타났다. 그러나 그 때는 이미 나폴레옹이 워털루에서 쫓겨간
뒤였다. 프랑스군은 나폴레옹으로부터 전황을 보고 받고 여유를 부리다가
그만 예정한 시간보다 한나절이나 뒤늦게 도착하고 만 것이다. 이로써
웰링톤은 역사 속에서 당당히 빛나는 워털루 전투의 승리자가 되었고, 한
세대 동안 이름을 떨쳤던 나폴레옹은 패배자로 인생의 막을 내렸다.
4등칸이 없어서
1905년 슈바이처 박사는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바칠 결심을
하고 아프리카 가봉의 랑바레네로 출발했다. 그리고 그곳의 오고우에 강욱
위에 원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병원을 세웠다. 처음에는 자신의 수입만으로
기구를 갖추고 병원을 운영하던 슈바이처 박사는 차츰 병원 운영이
어려워지자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모금 운동을
벌여 얼마간의 돈을
구해 올 작정이었다.
슈바이처가 고향에 도착하던 날, 기차역에는 많은 사람들이 슈바이처
박사를 환영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기차가 역내로 들어오자
사람들은 우루루 1등칸 입구로 모여들었다. 그런데 손님들이 하나 둘 내리고
1등칸에 탄 마지막 손님이 내릴 때까지도 슈바이처 박사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술렁거렸다. 박사가 기차에 타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돌 무럽 누군가 슈바이처 박사가 2등칸에 탔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다시 2등칸으로 몰려갔다. 그러나 2등칸에도 슈바이처
박사는 없었다. 실망한 슈바이처 박사의 친척들과 환영인파는 터덜터덜
기차역을 빠져나갔다.
그 때 가방을 든 허름한 차림의 슈바이처 박사가 나타났다. 슈바이처임을
알아본 친구들이 그에게 뛰어 갔다.
"자네, 기차를 타고 오지 않았나?"
슈바이처 박사는 3등칸을 타고 온 것이었다. 슈바이처가 당연히 1등석에
앉아서 올 줄 알았던 친구들이 물었다.
"왜 3등칸을 타고 왔지?"
그러자 슈바이처 박사가 웃으며 말했다.
"기차에는 4등칸이 없어서 3등칸을 탔을 뿐이네."
마음의 병
철도국에서 근무하는 한 직원이 실수로 냉동
하차 안에 갇히고 말았다. 아무리 빠져나가려고
해도 안에서는 문을 열 수가 없었다. 소리를
질러도, 문을 힘껏 두드려 보아도 모두
헛일이었다.
이제 누군가 우연히 냉동 화차의 문을 열어 주기를 기다리는 방법 외에는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사람은 희망을 버리고 자포자기의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드디어 몸이 저려 오기 시작했다.
그는 다가오는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몸 상태를 화차의 벽에다 기록해
나갔다.
'몸이 점점 차가워진다.․․․․ 춥다. 그러나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몸이
얼어 오는 것 같다. 정신이 몽롱해진다. 아마도 이제는 마지막인가 보다. 오,
제발․․․․․'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다른 직원이 우연히 화차의 문을 열었을
때 그는 이미 싸늘하게 식은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 냉동 화차는 실은
오래 전부터 고장이 나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냉동 화차의 실내 온도는 무려 섭씨 13도나 됐
으며, 실내 공기도 충분했다고 한다.
어머니의 사진
미국이 필리핀을 점령할 때의 일이다.
미국 군함에서 마닐라 해안을 향해 함포 사격을 하려고 할 때 한 해병의
옷이 바다에 떨어졌다.
상관이 극구 말렸으나 그 해병은 바다로 뛰어들어 자신의 옷을 건졌다. 그
해병은 명령 불복종의 죄로 군법 회의에 회부되었다.
"작전에 방해가 되는 줄 알면서 왜 바다로 뛰어들었는가?"
법무관이 이렇게 물으니 그는 사진 한 장을 꺼내 보였다.
"우리 어머니의 사진입니다. 바다에 떨어진 옷 속에는 이 사진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 말에 법무관은 감동하여 악수를 청했다.
"이 사람은 어머니의 사진을 위해 이처럼 희생 정신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해병은 무죄로 석방되었다.
어머니의 사랑은 위대하다. 그래서 아들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서까지
어머니의 사진을 건진 것이다.
어린아이를 안은 어머니의만큼 맑고 깨끗한
것은 없으며, 많은 자식에게 둘러싸인
어머니만큼 경애를 느끼게 하는 것은 없다.
또한 어버이를 사랑하는 사람은 남을
미워하지 않고, 어버이를 존경하는 사람은
남에게 오만하지 않는다.
알 게 뭐야!
두 대의 트럭이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밀가루를 싣고 빵 공장을 향해
가는 차와 시멘트를 싣고 벽돌 공장으로 가는 차였다.
가다 보니 오줌이 마려웠다. 두 차의 운전 기사는 같은 시간에 휴게소에
들러 화장실에 갔다. 한 사람이 먼저 나와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다른
사람도 나와 차에 올랐다. 그런데 이상했다. 아까 그 차가 아닌 듯했다. 그
사람은 중얼거렸다. "알 게 뭐야." 다른 운전 기사도 차가 바뀐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도 중얼거렸다. "알 게 뭐야."
밀가루를 실은 트럭은 벽돌 공장에, 시멘트
트럭은 빵 공장에 도착했다. 벽돌을 만드는
사람은 밀가루를 물에 풀어 벽돌을 찍으며
중얼거렸다. "이 시멘트는 꼭 밀가루 같군.
하지만 알 게 뭐야." 빵 공장에서도 빵을
굽는데 시간이 걸리고 색이 시꺼머졌다. 빵
만드는 사람은 중얼거렸다. "알 게 뭐야."
밀가루 벽돌은 집 짓는 곳으로 옮겨졌다.
시멘트 빵은 빵집을 거져 집집마다 배달되었다. 이윽고․․․․․․․.
"우르르, 폭삭." "와지직." "아야, 앙앙."
집은 무너졌다. 사람들은 이를 다치고, 배를 움켜 쥐었다.
우리도 "알 게 뭐야."를 외치며 살아 가고 있지
않은가를 다같이 생각해봅시다. 아무렇게나 버린
종이, 농부가 마구 뿌린 농약, 마구 강에 버린
비눗물이 지구를 병들게 해서 인류를 공포에 떨게
합니다.
쥐의 심장
고양이에 대한 두려움으로 끊임없이 고통을 받는 쥐가 한 마리 있었다. 이를 불쌍히 여 겨 한 마법사가 이 쥐를 고양이로 변하게 했다.
그러자 마자 이 고양이는 개를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마법사는 고양이를 개로
만들었다. 그러자 마자 곧 이 개는 호랑이를 두려워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마법사는
개를 호랑이로 만들었다.
그러자 마자 이 호랑이는 또 사냥꾼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그런 뒤, 이 마법사는, "다 시 쥐가 되어라. 너는 쥐의 심장밖에 가질 수 없으니 나도 어쩔 수 없으니 나도 어쩔 수 없구나."라고 말했다.
인디언들 가운데 전해 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건강이나 재산,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게 될까 두려워하고 있습니 다. 어떤 학생은 성적이 떨어질까, 일등 자리를 놓칠까 두려워하다 몸을 상하기도 합니 다. 그러나 무엇을 잃더라도 삶 그 자체를 받쳐주는 '자기 자신'만을 잃지 않는다면 두 려울 것이 없습니다.
혹 두려움을 잘못된 방법으로 풀려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까? 그런 사람은 타조와
같습니다. 왜냐구요? 타조는 사냥꾼에게 쫓기면, 바보스럽게도 머리를 모래 땅에 파묻고 는 그 몸뚱아리가 다 드러나 보이는 것을 잊으려고 애쓴답니다.
절망적이라구요?
어느날 회사일을 마치고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에 나는 집 근처 공원에 잠시 차를
세웠다.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동네 꼬마들의 야구경기를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일루 쪽
벤치에 앉으면서 나는 일루 수비를 보고 있는 아이에게 점수가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아이는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가 14대 0으로 지고 있어요?"
내가 말했다.
"그래? 그런데 넌 그다지 절망적이지 않아 보이는구나."
그러자 아이가 깜짝 놀란 표정을 하고 내게 말했다.
"절망적이라구요? 왜 우리가 절망적이어야 하죠? 우린 아직 한 번도 공격을 하지
않았는데요."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제 2권 중에서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
땅거미가 짙게 깔린 어느 겨울날 한 걸인이 런던 교외에 있는 자그마한 악기점에 들어
왔다. 그의 팔에는 낡은 바이올린 하나가 들려 있었다.
"저는 지금 몹시 배가 고픕니다. 제발 이 바이올린을 사주세요. 그래야 먹을 것을 구
할 수 있습니다."
악기점 주인은 그에게 당시 5달러를 주고 그 바이올린을 샀다. 그 걸인은 그 돈을 고
맙게 받았다.
악기점 주인은 낡은 바이올린을 튕겨 보았다. 그때 그는 바이올린의 훌륭한 소리에 놀
라지 않을 수 없었다. 촛불을 밝히고 그 악기의 내부를 조심스럽게 들여다 보았다. 그가
관찰한 그곳에는 위대한 악기 제작자 '안토니오 스타라디바리 1704'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그는 바로 이것이 100여년 동안 그 행방을 모르던 유명한 스타라디바리우스라 는 것을 알았다. 사람들은 없어졌던 그 바이올린을 찾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기울였으 나 헛수고였었다.
이 바이올린은 계속 여러 사람을 거쳐 10만 달러짜리 바이올린이 되었다. 몇 년 동안
그 가난한 사람은 그렇게 값비싼 악기를 갖고 있었지만 그는 그것의 가치를 알지 못했 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 봅시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을 아시죠? 그 대리석은 이태리 플로랜스 지방에서 그 지방
의 조각가들이 조각을 하려고 시도해 보았으나 좀처럼 잘 되지 않아 포기한 돌덩어리였
답니다. 40여 년 동안 쓰레기 더미 위에 방치되어 있던 돌을 발견한 미켈란젤로는 그
돌에서 어떤 잠재적 가능성을 느끼고서 조각실로 옮겨 세계적인 걸작을 탄생시겼답니 다. 이와 같이 우리의 주위에도 놀라운 가치를 가진 그 무엇이 있는데, 우리가 채 깨닫 지 못해 방치하고 있지나 않을까요? 아니 우리 내부에 이런 것이 있는데 발견하지 못 한 것은 아닐까요?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을 찾아 봅시다.
용서의 모습
제 1차 세계대전 때 있었던 일이다. 전쟁이란 파괴이고 파괴는 철
저하게 이뤄져야 한다. 독일군은 수많은 도시를 파괴하며 벨기에로
쳐들어갔다. 그리고 벨기에를 무자비하게 파괴했다. 엄청난 인명피해
와 도시와 농촌이 파괴되고, 전쟁은 끝났다. 전쟁이 휩쓸고 간 곳은
황폐했다. 어느날 한 수녀가 어린 학생들을 데리고 마을의 어귀에 있
는 성당에 갔다. 가는 길이며 그 마을은 말할 수 없이 파괴되어 삭막
했다. 성당에 이른 수녀와 학생 일행은 모두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그리고 주기도문을 암송하기 시작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이름
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고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땅
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
가 우리에게..."
그러나 거기에서 주기도문은 더 이상 나가지 않고 끊어졌다. 조금
전까지 주기도문의 암송으로 일행의 목소리가 성당 안을 울리고 있었
던 순간이 끝나고 침묵에 휩싸였다. 어느 누구도 다음 기도문을 이어
나가지 못했다. 얼마 후 무거운 침묵을 깨고 힘찬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줌과 같이 우리의 죄를 사
하여 주옵시고..." 모두들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뒤족 거기에는 알베
르트 벨기에 왕이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왕이 거듭 끊어진 주기도
문의 그 부분을 이어가도록 재촉하자 학생들은 주기도문을 계속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줌과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벨기에 왕은 이와 같은 관대함으로 어려운 국가적 위기에 빠진 국
민을 이끌 수 있었다.
우물 안 개구리
아주 아주 큰 강에서 놀던 개구리 한 마리가 어느날 우물가에 이르렀다. 그놈은
분명 나그네였을 것이다. 우물 속으로 들어간 개구리는 그곳 토박이 개구리한테 자
신을 소개했다.
"나는 아주 아주 큰 강에서 왔소."
그러자 우물 안 토박이 개구리가 묻기를,
"큰 강이라? 큰 강이라니 그게 무슨 뜻이오? 그게 뭐요?"
큰 강에서 온 나그네 개구리가 말하기를,
"아하, 그건 말로 설명하기가 정말 난감하요. 당신은 이 우물에서 한 번도 벗어나
본 적이 없질 않소. 이 우물은 아주 조그마한 것이요. 그렇지만 내 한번 해보리다."
우물 안 토박이 개구리는 껄껄걸 웃었다.
"이 우물보다 더 큰게 있다는 소릴랑은 내 생전 들어 보질 못했소. 그래, 당신네
그 강은 얼마나 크오?"
토박이 개구리는 우물 안 넓이의 한 삼분의 일쯤 펄쩍 뛰어 보이면서 말하기를,
"이만큼 되오?"
큰 강에서 오나 나그네 개구리가 껄걸걸 웃었다.
"천만에요, 선생."
그러자 토박이 개구리는 우물 안 넓이의 한 삼분의 이쯤 다시 펄쩍 뛰어 보이면
서 말하기를,
"이 만큼 되오.?"
그리고 다시 우물 안 넓이의 삼분의 삼을 완전히 펄쩍 뛰어 보이면서 말하기를,
"자, 우리 우물은 이렇게 넓소."
그런데도 큰 강에서 온 나그네 개구리는 말하기를,
"도저히 설명하기가 불가능하오. 아주 아주 광대하단 말이오. 아예 경계도 없소!"
우물 안 토박이 개구리가 화를 벌컥 내며 말하기를,
"당신은 정말 미쳤거나 아니면 새빨간 거짓말쟁이군. 빨리 여기서 꺼져 버리시오!
말도 안 되는 소릴 지껄여도 유분수지!"
'우물에 앉아서 하늘을 본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마 '우물 안 개구리'일 겁니다.
올라가지 않고 산의 높이를 실감할 수 없으며 내려가 보지 않고 '땅의 사람들'의
한숨의 깊이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나의 삶의 잣대로 세상을 재려 하지 말고 진리의 잣대로 세상속의 나를 가늠해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떤 우물안에 있습니까?
효자와 불효자
한 마을에 효자와 불효자가 살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는 효자에 대한 칭송이 자자했다. 반면 불효자에 대한 비난 또한
그만큼이나 심했다.
매일 비난만 받던 효자가 '나도 그 효자처럼 행동해서 칭찬을 받아야지'하고 마음먹었
다. 그래서 그는 효자가 하는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런데 불효자가 보기에 효자가 하는 행동은 뜻밖에도 아주 쉬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버지의 옷을 입고 있다가 옷이 따뜻해지면 아버지께 내어 드리고,
밥상이 들어오면 음식이 상했나 먼저 먹어 보고, 밤에는 아버지의 잠자리에 먼저 누워
잠자리를 따뜻하게 보살펴 드리는 것 정도가 효자가 하는 일이었다.
"뭐야, 별 것 아니고 아주 쉬운 일이잖아!"
집으로 돌아온 그는 효자가 한 행동 그대로 했다. 그런데 칭찬은커녕 오히려 호통만
얻어들었다.
"이 무례한 놈, 어디 감히 어른의 옷을 입어?"
또 음식을 먼저 먹어 볼라치면
"점점 못된 짓만 하는구나. 어른보다 먼저 수저를 들다니."하면서 혼을 내고, 잠자리를
보살펴 드리려고 하면 또 이런 호통이 따르는 것이었다.
"이제는 어른보다 먼저 잠자리를 차지하려 드는구나. 당장 집에서 나가거라, 이놈!"
불효자는 왜 자신이 그런 호통을 들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효자와 불효자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 답을 말하기 전에 먼저 비슷한 이야기 하나 더
해 보면
한 사나이가 살찐 닭을 잡아 아버지께 대접했다. 아버지는 기뻐하며 닭을 어디서 났느
냐고 물었다. 그러자 아들은 이렇게 대꾸했다.
"아버지, 그런 데 신경 쓰지 마시고 어서 많이 들기나 하세요."
아들의 말에 아버지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또 한 사나이가 있었는데, 그는 아버지의 방앗간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마침 나라 안
의 방앗간 주인들을 모아 일을 시키겠다는 국왕의 포고가 내려져, 사나이는 아버지에게
방앗간 일을 맡기고 자기가 대신 궁궐로 찾아갔다.
이 두 사나이 중 누가 천국으로 가고 누가 지옥을 떨어졌을까요?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천국으로 간 아들은 방앗간집 아들이고, 지옥으로 떨어진 아들은 닭고기를 대접한 아
들입니다. 아버지 대신 강제 노동 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은 방앗간집 아들이 천국으로
간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아버지에게 닭고기를 대접한 아들은 어째서 지옥에 떨어졌
을까요?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대접했더라도 아버지의 질문에 정성껏 대답하지 않았으 니 지옥으로 간 것이다.
정성이 담긴 효도, 그것이 바로 참된 효도이다.
5.18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 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광주시 북구 망월동 운정동산 5.18묘역. '5.18 광주 민중 항쟁에 참여하여 군부 독
재의 총칼과 맞서 싸우다가 산화하심' 무명 열사의 묘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어디서
태어났는지, 어디서 살았는지, 그러다 뉘 손에 죽었는지 그저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떠난 그에게서 우리는 역사를 보고, 그 역사의 피울음을 듣게 된다.
갑오농민 전쟁과 식민지 시대의 광주 학생 독립 운동을 비롯한 저항의 전통을 자
랑처럼 간직하고 있던 1980년 5월의 광주. 5.16이후의 경제 개발 계획으로 인한 지
역간 불균형은 호남 지방의 상대적 빈곤을 심화시켜 이 지역 주민들의 저항 의식을
뿌리깊게 만들어 왔었다.
그리고 5월 18일! 5월의 광주는 그 이름만큼이나 파란의 세월을 뚫고 일어섰다.
처음에 5월은 광주사태로 불렸다. 폭도들의 난동이라며. 5월의 광주는 민중의 염원
이 실현되는 것을 가로막고 있는 실체가 무엇인지를 파헤쳐 놓았고, 5월 광주의 핵
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바로 민중!
80년 5월의 광주는 극히 짧았던 기간이긴 했지만 실질적인 민중 자치를 이루었던
5월 22일부터 27일에는 먹을 것이 귀해도 물건 사재기가 없었고, 물건값 바가지가
없었고, 수천 정의 총기가 시민군의 손에 있었어도 단 한 건의 강도 절도 은행털이
가 없었고......... 요즘에 인도네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민주와운동과는 차원이 달랐
다. 그때 그 광주는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사람 세상의 모습을 아름답게 보
여 주었다. 그리고 광주는 '나눔과 평화의 도시'로 변했다. 오히려 최악의 인간성에
대한 범죄는 공공질서를 유지하는 무장력에 의해 저질러졌다. 전화도 끊기고, 편지
도 끊기고, 교통도 끊기고....
5월의 광주, 그리고 광주 정신. 그것은 명료하다. 민중 그리고 그들에 의한 나눔과
평화, 목숨까지 나누어 주고 이 땅의 참평화를 예비한 것이다. 여기에서 5월 광주는
민족 민주 운동을 한 차원 끌어 올리는 힘점으로 작용한 것이다.
짝짝이 구두
미국의 제 40대 대통령을 지낸 로널드 레이건이 어렸을 때 일이다.
어느날 레이건은 새 구두를 맞춰 주겠다는 숙모를 따라 기쁜 마음으로 구둣방에
갔다. 구두 수선공은 레이건의 발 치수를 잰 뒤 물었다.
"구두의 끝을 둥글게 해줄까 아니면 각이 지게 해줄까?"
그러나 레이건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어떤 모양이 더 멋있을까 생각하며
망설이고 있는 그에게 수선공은 잘 생각해 보고 다시 오라고 했다.
며칠 뒤 레이건은 길에서 우연히 구두 수선공을 만났다. 반갑게 인사를 건넨 수선
공은 구두 모양을 결정했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아직도 어느 쪽이 좋은지 결정하지
못한 레이건은 두 가지 구두 모양이 모두 멋질 것 같아 마음이 오락가락한다고 했
다. 그러자 수선공이 말했다.
"정 그렇다면 일주일 뒤에 구두를 찾으러 오너라.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그의 말에 레이건은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 솜씨 좋은 구두 수선공이 어련히
알아서 구두를 멋지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기대한 것이다.
그러자 며칠 뒤 구두를 찾으러 간 레이건은 수선공이 만들어 놓은 구두를 보고
할말을 잃었다. 구두의 한 짝은 각이 지고, 다른 한 짝은 둥글게 만들어진 짝짝이
구두였던 것이다. 몹시 당황해 하는 레이건에게 수선공이 말했다.
"너는 이 일을 통해서 네 일을 다른 사람이 대신해서 결정을 내려 줄 수 없다는
것을 배웠을 거야. 이처럼 스스로 내리는 결정은 무척 중요한 일이란다."
그 뒤 레이건은 이 일을 항상 머리 속에 두었고, 가끔 사람들에게 그 얘기를 들려
주며 이런 말을 잊지 않았다.
"나는 바로 그때 그곳에서 스스로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엉뚱한
결정을 해 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살아있는 친구의 장례식
"모두 우리 집으로 모이게. 오늘은 우리 집에서 사랑하던 친구의 장례식이 있을
예정이네."
갑작스러운 한용운의 연락을 받고 친구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다. 대체 누가 죽었다는 거지? 더구나 친구의 장례식을 자기 집에서 치르다니.
영문을 모르겠군.'
친구들은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그의 성품을 잘 아는 터라 급히 달려갔다. 그런데
장례식을 치른다고 하던 그의 집에는 술과 음식이 잔뜩 차려져 있었다.
"이보게 용운이,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우리 친구들 중 누군가
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왔는데 웬 술상인가? 게다가 자네는 장례치를 준비
는 하나도 갖추고 있지 않으니 영문을 모르겠네."
놀란 친구들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러자 한용운이 껄걸 웃으며 대답했다.
"자네들 말이 맞네. 오늘 우리는 친구 한 사람을 떠나 보내는 장례식을 할 거야.
오늘은 바로 우리의 절친한 친구였던 최남선의 장례식이라네. 독립 운동을 하던 사
람이 일본 편에 섰으니 그는 이미 우리의 친구가 아니며 살아 있다해도 죽은 목숨
과 같지. 그래도 그 동안 친구였던 마지막 도리로 난 그의 장례식이 있는 오늘, 우
리 마음껏 마시며 이젠 그 친구를 잊어버리세."
말을 마치고 잔을 높이 든 한용운의 두빰으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눈물은 친구
를 잃어버린 슬픔의 눈물이었다. 한용운과 함께 술잔을 높이 들고서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하여"를 크게 외치는 친구들의 눈에서도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도밍고의 실수
20세기 최고의 테너라 일컬어지는 플라시도 도밍고가 서서히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을 무렵의 일이다. 소프라노 마르타와
오랫동안 공연을 하고 싶었던 그는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삼
년 가까이 머물며 오페라 공연을 했다.
그런데 파우스트 공연이 있던 날, 도밍고는 마르타를 향해
"당신을 사랑해, 당신을 사랑해"라고 노래하는 장면에서 그만
목소리가 갈라지는 등 몇 가지 작은 실수를 범했다. 그는
곧이어 아리아를 불러야 했던 마르타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나
그 실수를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음날 발간된 신문에는 온통 그의
목소리를 칭찬하는 기사뿐이었다. 도밍고는 우쭐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무대에서 자신이 실수했을 때 자신을 바라보던 마르타의 눈빛을 기억하고
있었다. 공연이 끝나자 마르타가 도밍고에게 다가와 말했다.
"나는 당신의노래를 알아듣지 못하겠어요. 당신의 발음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구요."
그러나 도밍고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을 짓자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칭찬하니까 나도 물론 좋아요, 하지만 나는 당신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의 잘못을 말하려는 거예요."
도밍고는 잠시 우쭐했던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며, 공연이 끝난 텅 빈 극장에서
노래를 반복해 부르며 자기의 단점인 발음 연습을 거듭했다. 그때마다 마르타는
그에게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2년이 지난 뒤, 비로소 그는 정확한 호흡법으로
풍부한 성량과 안정적인 목소리를 갖게 되었다. 초기에 이런 보이지 않는 단점을
고친 것은 도밍고의 눈부신 성공에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호랑이를 베고 누워서
어느 겨울날 방랑시인 김삿갓이 눈 덮인 산길을 걷고 있었다. 그러기를 한참, 날
이 어둑어둑해지자 잠잘 곳을 찾기 위해 산속을 헤매다가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
은 듯한 낡은 움막 한 채를 발견했다.
"아이고, 이 산속에서 얼어 죽으란 법은 없네."
그는 얼른 움악 안으로 들어가 삿갓을 벗고 짐을 내린 뒤, 푹신한 덤불 위에 누웠
다. 그리고 따듯한 덤불 속에서 한동안 달콤하게 잠을 청했다.
얼마 뒤 그는 갈증과 허기 때문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그런데 문득 등이 촉감이
이상했다. 슬쩍 뒤를 돌아보았는데, 순간 그는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눈을
크게 뜨고 덤불을 자세히 살펴보니, 커다란 호랑이가 깊이 잠들어 있는 것이 아닌
가? 그는 호랑이 등을 베고 잔 것이었다. 김삿갓의 등줄기예선 식은땀이 흘렀다.
"이를 어쩐다. 일어나서 도망을 가려 하면 호랑이가 깰지도 모를 일이고 그렇다고
그냥 이대로 있을 수만도 없는 일이 아닌가?"
그는 답답한 마음으로 움막 밖을 내다보았다. 천지엔 온통 눈이 하얗게 덮혀 있었
고, 환하게 밝은 달이 고요한 세상을 비추고 있었다. 또 달빛을 받은 눈은 보석처럼
반짝였으며 하늘에는 주먹만한 별들이 뿌려져 있었다. 순간 그는 한숨을 크게 내쉬
며 탄식했다. "이 좋은 밤에 호랑이 밥이 되어야 하다니..."
그러나 위기의 구 순간에도 감삿갓의 입에서는 시 한 수가 흘러나왔다.
"달도 희고 산도 희고 온 천지가 흰데, 산은 깊고 밤은 깊어 나구네 근심도 깊도
다."
그는 시를 나지막이 읊조리며 천천이 일어나 그 움악을 빠져나왔다.
김삿갓의 여유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작은 것의 소중함
한 소년이 학자를 배에 태우고 강을 건너게 되었다. 강을 건너던 도중에 학자는
강물에 떠내려가는 나뭇잎을 건져 올려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가 문든 노를 젓는 소년에게 물었다.
"애야, 너는 생태학을 배웠니?"
"아니오, 배우지 못했습니다."
노학자의 갑작스런 물음에 소년은 부끄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어허, 저런! 그렇다면 너는 인생의 사분의 일을 헛되게 산것이나 마찬가지야, 알
겠니?"
배는 계속해서 흘러갔다. 한동안 생각에 잠겼던 학자가 다시 강 건너의 땅을 가리
키면서 물었다.
"애야, 그렇다면 지질학은 배웠겠지?"
"아직 배우지 못했습니다."
소년은 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럼 너는 인생의 절반을 헛되이 살았구나. 지질학도 매우 중요하단다."
그때였다. 강 상류에 있는 댐이 무너져 엄청난 물살이 휩쓸려 내려왔다. 배는 금
방이라도 뒤집어질 듯이 요동을 쳤다. 노를 젓던 소년은 황급히 노학자에게 소리쳤
다. "선생님! 선생님은 헤엄을 칠 줄 아십니까?"
"아니, 나는 수영을 배우지 못했는데!"
소년은 재빨리 물속으로 뛰어들면서 학자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 인생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뭐, 뭐라고! 어이쿠, 사람 살려!"
근엄하던 학자는 발을 동동 구르며 소년을 향해 외쳤다.
우리는 살아가다가 '이제는 어느 정도 안심이다'라는 생각을 갖게 될 때가 있습니
다. 그러나 그때가 오히려 위태로움에 빠지기 쉬운 순간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큰
일을 이룬 뒤에 안도의 숨을 돌리는 것은 이해하지만 평생 쌓아올린 공든 탑이 작
은 일로 인해 한순간에 무너진다는 사실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젊음
젊은은 인생의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이다. 그것은 장비빛 뺨도, 빨
간 입술도 아니며 나긋나긋한 무릅도 아니다. 그것은 삶의 깊은 샘에서 솟아
나는 신선함이다. 젊음은 용기가 비겁함을 누르는 것을 뜻하며 안이함을 떨
쳐 버리고 모험에 나서는 것을 뜻한다. 이런 성향은 때로는 20살의 청년에게
서가 아니라 60살의 노인에게서 발견되기도 한다. 나이만 먹는다고 늙는 것
이 아니다. 이상을 버릴 때 우리는 늙는 것이다.
나이는 피부에 주름살을 만들지만, 열정이 식어
버리면 정신에 주름살을 만든다. 걱정과 두려움
고 자기불신은 용기를 꺽고 정신을 죽여 버린
다. 60살이든 16살이든, 사람의 가슴 속에는 경
이로움이 끌리는 마음, 미지의 것에 대한 꺼지
지 않는 호기심 그리고 삶이란 게임에서 느끼
는 기쁨이 있게 마련이다. 당신과 내 가슴의 한
복판에는 무선전신국이 있다. 그 무선전식국이
인간과 신에게서 오는 아름다움, 희망, 환호, 용기 그리고 힘의 메시지를 수
신하는 동안은 당신은 젊은 것이다. 안테나가 내려지고 당신의 정신이 냉소
의 눈과 비관의 얼음으로 덮이면, 당신은 나이가 20살이라도 늙은 것이며,
안테나가 올라가 있고 그 안테나를 통해 낙관의 전파를 수신한다면, 당신은
나이가 80이라고 젊은채로 죽을 수 있는 것이다.
말을 위한 기도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수없이 뿌려 놓은 말의 씨들이
어디서 어떻게 열매를 맺었을까
조용히 헤아려 볼 때가 있습니다.
무심코 뿌린 말의 씨라도
그 어디선가 뿌리를 내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왠지 두렵습니다.
더러는 허공에 사라지고
더러는 다른 이의 가슴속에서
좋은 열매를, 또는 언짢은 열매를 맺기도 했을
언어의 나무
주여!
내가 지닌 언어의 나무에도
멀고 가까운 이웃들이 주고 간
크고 작은 말의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습니다.
둥근 것, 모난 것
밝은 것, 어두운 것
향기로운 것, 반짝이는 것
그 주인의 얼굴은 잊었어도
말은 죽지않고 살아서
나와 함께 머뭅니다.
살아 있는 동안 내가 할 말은
참 많은 것도 같고 적은 것도 같고
그러나 말이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세상살이
매일 매일 돌처럼 차고 단단한 결심을 해도
슬기로운 말의 주인되기는
얼마나 어려운지
날마다 내가 말을 하고 살도록
허락하신 주여
하나의 말을 잘 탄생시키기 위하여
먼저 잘 침묵하는 지혜를 깨우치게 하소서.
헤프지 않으면서 풍부하고
경박하지 않으면서 유쾌하고
과장하지 않으면서 품위있는
한 마디의 말을 위해
때로는 진통 겪는 어둠의 순간을
이겨내게 하소서
참으로 아름다운 언어의 집을 짓기 위해
언제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도를 닦는 마음으로 말을 하게 하소서.
언제나 진실하고
언제나 때에 맞고
언제나 책임있는 말을
갈고 닦게 하소서.
내가 이웃에게 말을 할 때에는
하찮은 농담이라도
함부로 내뱉지 않게 도와 주시어
좀 더 겸허하고
좀 더 인내롭고
좀 더 분별있는
사랑의 말을 하게 하소서.
내가 어려서부터 말로 저지른 모든 잘못
특히 사랑을 거스른 비방과 오해의 말들을
경솔한 속단과 편견과
위선의 말들을
주여 용서하소서.
나날이 새로운 마음, 깨어 있는 마음
그리고 감사한 마음으로
내 언어의 집을 짓게 하시어
해처럼 환히 빛나는 삶을
노래처럼 즐거운 삶을
당신의 은총속에 이어가게 하소서
아멘 - 이해인 -
승자와 패자
패자는 1%의 노력에 승부를 걸고
승자는 99%의 노력에 승부를 건다.
패자는 고통을 불편으로 응답하고
승자는 고통을 인내하며 한 걸음 상승한다.
패자는 오늘의 기회를 내일로 미루고
승자는 오늘의 기회를 오늘 최대로 이용한다.
패자는 과거의 습관에 얽매이고
승자는 새로운 내일을 계획한다.
패자는 반대자를 적으로 생각하고
승자는 반대자를 동지로 생각한다.
패자는 실패의 핑계를 찾으려 하고
승자는 실패의 원인을 찾으려 한다.
패자는 인생을 남과의 싸움으로 생각하고
승자는 인생을 자신과의 싸움으로 생각한다.
패자는 쾌락과 노는데서 행복을 찾으려하고
승자는 일과 보람 속에서 행복을 찾으려 한다.
패자는 할 수 없는 어려운 일만을 꿈꾸고
승자는 할 수 있는 쉬운 일을 실천한다.
패자에게는 되는 일이 없어 시간을 지겨워하고
승자는 시간이 감을 안타까워 한다.
승자는 패자보다 더 열심히 일하지만
시간의 여유가 있고
패자는 승자보다 더 게으르지만
늘 "바쁘다, 바쁘다"라고 말한다.
승자의 하루는 25시간이고
패자의 하루는 23시간이다.
승자는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놀고, 열심히 쉰다.
패자는 허겁지겁 일하고,
빈둥빈둥 놀고, 흐지부지 쉰다.
승자는 시간을 관리하여 살고
패자는 시간을 끌며 산다.
승자는 시간을 붙잡고 달리며
패자는 시간에 쫓겨서 달린다.
승자는 몸을 받치고
패자는 혀를 받친다.
승자는 행동으로 말을 증명하고
패자는 말로 행위를 변명한다.
승자는 책임지는 태도로 살며
패자는 약속을 남발한다.
승자는 벌받을 각오로 결단하여 살다가 영광을 받고
패자는 영광을 위하여 꾀를 부리다가 벌을 받는다.
승자는 인간을 섬기다 감투를 쓰며
패자는 감투를 섬기다다 바가지를 쓴다.
세 종류의 친구
나의 친구는 세 종류가 있다.
나를 사랑하는 친구
나를 미워하는 친구
그리고
나에게 무심한 친구 말이다.
나를 사랑하는 친구는 나에게
유순함을 가르쳐 준다.
나를 미워하는 친구는 나에게
조심성을 가르쳐 준다.
그리고
나에게 무심한 친구는 나에게 독립성을 가르쳐 준다.
젓가락 행진곡
폴란드의 유명한 피아노 연주가 파데레프스키가 미국에서 공연할 때의 일이다. 한 대형 연주장에서 상류층을 대상으로 한 연주 일정이 잡히자 그는 공연 날이 되기 전까지 열심히 연습에 몰두했다.
드디어 공연 날, 연주장에는 관중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그 중 아홉 살 짜리 꼬마를 동반한 한 여인이 있었는데, 그녀는 피아노를 배우는 자신의 아이에게 멋진 공연을 보여주고 싶어 일찍부터 연주장을 찾아온 것이다.
연주회가 시작되기 전, 파데레프스키가 무대 뒤편에서 공연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하나둘 자리를 잡고 않아 청중들 사이에 아까부터 한 꼬마가 정신없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꼬마는 연주를 기다리다가 지친 나머지 객석으로 오가며 지루함을 달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꼬마가 무대 위로 올라가더니 사람들이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사이,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꼬마는 더듬더듬 '젓가락 행진곡'을 연주했다. 그러자 꼬마의 피아노 소리를 들은 청중들이 수군대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꼬마를 무대에서 끌어내시오!"하는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때 무대 뒤에서 이 소동을 알게 된 파데레프스키가 깜짝 놀라 얼른 연주복을 집어들고 무대로 달려나왔다. 그리고 꼬마 옆으로 살며시 다가가 꼬마의 연주에 즉흥적으로 화음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는 꼬마와 함께 '젓가 락 행진곡'을 연주하면서 꼬마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만두지 말고 계속하렴. 옳지 잘하는구나."
어느새 고함을 그친 청중들도 피아노 대가와 꼬마의 연주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그날 청중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파데레프스키의 즉흥 연주를 들으며 그의 인간됨에 경외심을품게 되었다.
최후의 만찬
'최후의 만찬'을 드리던 무렵 레오나르도다빈치는 극도로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그를 방문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고향 친구였지만 새 작품에 골몰해 있던터라 그는 반가움보다 부담감이 앞섰다. 그들은 함께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었는데 우연히 친구가 그의 그림에 관해 몇 가지 충고를 했다. 그런데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 터라 신경이 곤두서 있던 그는 친구의 말이 마음에 거슬렸다. 그는 몹시 화를 냈으며 마음이 상한 친구는 얼굴을 붉히며 가 벼렸다. 친구가 나가 버리자 그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캔버스로 다가섰지만 웬일인지 집중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예수의 얼굴을 그리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았다. "왜 이런 거야? 도대체 집중이 되지 않으니." 그는 마침내 붓을 집어던지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리고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했다. 그때 그의 머리 속에 얼굴을 붉히며 나가버린 친구가 떠올랐다. '아 그랬구나. 왜 그림이 안 되는지 이제 알 것 같다. 마음이 이렇듯 선하지 못한데 어떻게 예수의 얼굴을 그린단 말인가.' 그는 즉시 옷을 챙겨 입고, 친구가 머무르고 있는 곳을 찾아갔다. 그리고 진심으로 사과했다. 친구도 환한 얼굴로 그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친구에게 사과를 하고 돌아온 그날 밤 다빈치는 비로소 예수의 성스러운 얼굴을 완성할 수 있었다고 한다.
행복
누군가가 내 눈물을 닦아줄 때
나는 행복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행복할 때는
내가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줄 때다.
누군가가 쓰러진 나를 일으켜 세울 때
나는 행복하다.
그러나 그 보다 더 행복할 때는
내가 쓰러진 누군가를 일으켜 세울 때다.
나무는(류시화)
나무는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않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는 걸까
그러나 굳이 바람이 불지 않아도
그 가지와 뿌리는 은밀히 만나고
눈을 감지 않아도
그 머리는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있다.
나무는 서로의 앞에서 흔들리지 않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는 걸까
그러나 굳이 누가 와서 흔들지 않아도
그 그리움은 저의 잎을 흔들고
몸이 아프지 않아도
그 생각은 서로에게 향해 있다.
나무는
저 혼자 서 있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는 걸까
세상의 모든 새들이 날아와 나무에 앉을 때
그 빛과
그 어둠으로
저 혼자 깊어지기 위해 나무는
얼마나 애를 쓰는 걸까
-류시화-
여우사이
나무와 나무사이
섬과 섬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어디에나 사이가 있다.
여우와 여우사이
별과 별 사이
마음과 마음 사이,
그 사이가 없는 곳으로 가고 싶다.
물과 물고기에는 사이가 없다.
바다와 파도에는 사이가 없다.
새와 날개에는 사이가 없다.
나는 너에게로 가고 싶다.
사이가 없는 그곳으로
사이가 없는 그곳으로 가는 방법을 찾는다. 나무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그 방법은 자신의 생명을 더욱 풍성하고 아름답게 발전시키는 것이다. 자신의 생명을 풍성히 하지 않고서 어린 채로, 연약한 채로, 의지하고픈 마음은 사랑이 아니다. 애정이 아니다. 홀로 서는 풍성한 생명은 땅 위의 다른 나무에 가까이 가고자 함보다는 땅 속에 서로 맞닿은 자양분을 믿고 느끼며, 취하는 자이다. --나를 통해 당신이 더욱 아름다워질 수 있다면(98.6.2)
평생의 교훈
미국의 정치가이자 과학자인 벤자민 프랭클린이 젊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프랭클린은 존경하는 선배를 방문했다. 한참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던 그는 헤어질 때가 되자 자리에서 일어나 선배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오늘 좋은 말씀 듣고 돌아갑니다. 또 찾아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그러게, 조심해서 가게나." 그런데 프랭클린이 방문을 열고 나서는 순간, 갑자기 '쿵' 소리가 나더니 이어 '어이쿠' 하는 비명과 함께 그가 이마에 손을 얹으며 비틀거렸다. 방문에 머리를 세게 부딛친 것이다. 선배 가 얼른 부축했지만, 눈앞이 아찔해진 그는 한동안 아무 말없이 얼얼해진 이마만 쓰다듬었다. 잠시 뒤 플랭클린은 겸연쩍은 듯 선배에게 '괜찮다'며 씩 웃어 보였다. 그때 선배가 그에게 말했다. "심하게 부딪혀서 많이 아프지? 하지만 자네가 지금 머리를 세게 부딪힌 것이 오늘 나를 찾아와서 얻은 최고의 수확이라고 생각하게." 그러자 프랭클린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선배의 얼굴을 다시 쳐다보았다. 선배는 벌개진 그의 이마에 힐끗 눈길을 주며 계속 말을 이었다. "음, 앞으로 살면서 항상 머리를 낮추고 겸손한 자세로 살아가라는 것이지, 이것을 평생의 교훈으로 새기라는 말일세." 순간 프랭클린은 방문에 이마를 부딪혔을 때보다도 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뒤 선배의 말을 가슴에 깊이 새긴 프랭클린은 학문연구든 정치활동이든 무슨 일을 하든지 한결같이 겸손한 자세와 부드러운 태도를 잃지 않았다고 한다.
네 마음 속에 있는 해답
지금 내가 누구를 미워하고 있다면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문제입니다. 이 문제의 해답은 내 마음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에 사랑과 진실을 담고 미워하고 있는 이를 찾아가 손을 내밀면 그와 함께 화평의 웃음을 나눌 수 있게 될테니까요. 지금 내가 어떤 일의 실패로 좌절해 있다면 그서은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문제입니다. 이 문제의 해답은 내 마음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에 새로운 희망의 열정을 풀어놓으면 곧 생기가 들면서 좋은 일을 하게 될테니까요. 지금 내가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로 괴로워한다면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문제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내 마음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에 순수한 사랑의 설레임만 간직하고 있다면 그것은 이별이 아니라 계속되는 만남이니까요. 지금 내가 가난으로 삶에 지쳐 있다면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문제입니다. 이 문제의 해답은 내 마음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에 정성과 인내를 채우면 쉽게 좋은 일자리를 얻게 될 것이고 그러면 금방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테니까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불만이 쌓여 얼굴이 어둡다면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문제입니다. 이 문제의 해답은 내 마음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내 마믐에 감사라는 단어를 살며시 넣어보면 금새 내 얼굴은 밝아질테니까요. 지금 내가 잘못된 길에 들어서 있다면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문제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내 마음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내 마음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에 정직하고 소박한 목표가 정해지면 나는 금방 잘못된 옛길을 벗어나서 좁지만 아름다운 새 길을 걷게 될테니까요.
시인의 소박한 꿈
1970년대 무렵 어느 날, 박목월 시인은 청와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저 육영수입니다. 선생님을 모시고 제가 문학공부를 하고 싶어서 여쭙는데,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그는 사흘 말미를 주면 생각해보고 답을 드리겠다고 했다. 그 동안 그가 내린 판단은 비록 대통력의 영부인이긴 하지만 순수하게 문학을 공부하겠다는 청을 거절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문학에 관심을 지닌 것에 고맙기만 했다. 그 뒤 몇 달동안 그는 일주일에 한 번 청와대로 들어가 육영수여사를 상대로 하루 두 시간씩 문학강의를 했고, 소정의 강의료도 받았다.
그러나 세간에는 그가 영부인의 가정교사가 되었으니 곧 벼락부자가 될 거라는 터무니없는 소문이 퍼져 나갔다. 하지만 그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약속한 기간의 강의를 모두 마치게 된 날, 육 영사는 그를 따로 불러 말했다.
"선생님, 혹시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말씀하세요 제가 도와 드릴께요."
공적인 강의료 외에 호의를 베풀겠다는 뜻이었지만,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 문단에서는 시집을 내지 못한 가난한 시인들이 많습니다. 그 분들의 시집 발간을 도와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대가급 시인이 아니고서는 시집을 낸다는 것이 하늘에 별따기처럼 어려웠다. 그의 뜻을 잘 알게 된 육여사는 정중히 대답했다.
"예, 잘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그 뒤 육여사는 그 약속을 지켰다. 매달 삼백만원짜리 수표가 박목월 시인에게 전달되었다. 그러면 그는 그 돈을 고스란히 출판사에 넘겼다. 그 후원으로 많은 시인들의 시집이 착례로 발간될 수 있었다.
희생
아이스크림의 50%는 공기
맥주의 75%는 물
사랑의 90%는 희생
뒤틀린 문제해결
어떤 사람이 점심식사를 맛있게 하고 세면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이 속에 뭔가 끼어 있어서 치솔질을 통해 입을 개운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물한 모금만 들이마시고, 세면대에 내뱉는 순간 그는 차마 못 볼것을 보고 말았습니다. 하얀 세면대 위에 떨어진 까만 찌꺼기는 자세히 보니 바퀴벌레의 뒷다리가 아니겠습니까? 갑자기 정신이 멍해졌습니다. 토할 것 같았습니다. 되돌아와서 그는 곰곰히 생각했습니다. '어쩌다 오늘 같은 일이 생겼을까?' 그리고 엉뚱하게도 그는 결심했습니다. '다시는 이를 닦지 않으리라. 이게 무슨 꼴인가?
그런 더러운 꼴을 보다니, 다시는 다시는 닦지 않으리.'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데 서툴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변의 한 친구가 있어서, 이 친구는 너무도 감정표현을 잘하고 유창하게 이야기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호응을
받았습니다. 그 친구만 만나면 속으로 느껴지는 열등감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결심했습니다. '다시는 그 친구를 만나지 않을꺼야. 그래, 그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거야. 이제는 열등감을 느끼지 않아도 될거야.'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때, 어떤 어려움 때문에 깊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때 우리는 문제 해결의 방법을 혹시 잘못 선택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에이, 이 집을 나가버리면, 나도 저런 비싼 옷을 사버리면, 충고랍시고 잔소리 많은 저 친구를 만나지 않으면, 정의,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저 신문을 없애버리면, 임금인상하라고 요구하는 노동조합을 없애버리면, 의견충돌이 자주 일어나는 회의를 하지 않으면...... 그렇습니다. 그리하면 바퀴벌레 뒷다리가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태양이 빛을 비추는 이유
7,8월 태양의 환한 빛, 저 따사로운 빛, 이 빛이 어떻게 생기는지 혹시 여러분은 생각해보셨습니다.? 이상한 이야기같지만 빛이 생기는 것은 태양이 자기 몸을 태우기 때문이랍니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태양이 끊임없이 자신과의 갈등과 투쟁을 지속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태양은 1만도가 넘는 에너지 충돌을 계속합니다. 지금도 엄청난 폭발을 쉼없이 하고 있어서, 그것은 원자폭탄 수백, 수천개가 일시에 터지고 있는 작용을 계속, 계속 해 나간답니다. 태양이 신과 같이 인간에게 위대하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은 그 자신이 죽어있지 않고 살아서 그 자신과의 싸움을 쉼없이 할 수 있는 지치지않는 능력때문일 것입니다. 지구 같으면, 그 싸움, 그 폭발을 견디지 못하고, 수십, 수백, 수천의 운석으로 분해되어서 이 은하계 곳곳으로 멀리 날아가벼렸을지 모릅니다. 어느 누가 과연 그런 자신과의 싸움을 지속하면서도 자신의 통합적 생명체를 보존, 유지할 수 있겠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 입니다. 자신과 더욱 가열찬 싸움을 진행해낼 수 있는 사람, 더 큰 혼란을 수용하면서도 자기 중심을 잃지 않고 발전시킬 수 있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이 태양이 되는 것입니다. 빛이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따뜻하게 해 줍니다. 어둠 속에서 다른 사람의 길을 안내해 줍니다. 그 사람이야말로 진정 사랑의 비밀을 가르쳐 줄 사람입니다.
서로 돕고 사는 마음
서로 돕고 사는 마음
스페인의 피레네 산꼭대기에는
아주 아름답지만 잡기 어려운 늙은 염소가 살고 있다고 합니다.
이 염소를 잡기 위해 많은 사람이 애썼지만
모두 실패하였습니다.
이유를 알고 보니 이 늙은 염소 곁에는
아주 젊고 영리한 염소가 있어 위험이 있을 때면
재빨리 알려 피해 달아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코뿔소는 눈이 나빠 잡히기 쉬운 동물입니다.
그런데 코뿔소의 거친 살갗에 몰려들어 곤충을 잡아먹는
새가 있어 위험한 일이 닥치면 이 새가 얼른 알려줌
으로써 코뿔소는 위기를 넘긴다고 합니다.
그뿐 아니라 오소리의 일종인 레이틀은 꿀을 좋아하는
두견새와 함께 다니는데 눈이 밝은 두견새가
벌집을 찾으면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레이틀이 벌집을
파헤쳐 둘은 맛있게 꿀을 먹는다는 것입니다.
서로 도와가며 오손도손 사는 것.
이 일이 얼마나 아름답고 이익이 되는지 모릅니다.
나의 부족한 점을 도와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이 아닐까요.
때로는
1812년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공했을때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쿠투조프 장군은 나폴레용군과 러시아 군의 전력을 냉정하게 비교해 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러시아 군의 강점이라고는 오직 광활한 영토와 매서운 동장군의힘 뿐이었다. 여기에 착안을 한 쿠투조프 장군은 후퇴의 후퇴를 거듭해 나폴레옹 군을 러시아땅 깊숙히 끌어들였다. 이렇다 할 전투도 없이 후퇴만 거듭하는 쿠투조프의 행동에 러시아의 관료들과 다른 장군들이 불평을 하기시작했다. "도대체 몇 달째 후퇴만 합니까? 전투 한번 안해보고 소중한 땅을 그렇게 쉽게 내주어도 됩니까?"
"장군이면 장군답게 용기 있는 모습을 보여야지요!"
항의가 많아지자 러시아 황제도 마음이 흔들려 쿠투조프 장군을 불신하기 지작했지만 장군은 모든 질책을 무시하고 계속 후퇴만 거듭했다. 그러다가 모스크바까지 내주게 되자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빈정댔다. 그러나 이번 후퇴는 다른 때와 달랐다. 정예의 게릴라 부대를 모스크바에 남겨두어 나폴레옹 군이 도시에 들어오기 전에 불을 질러 식량과 집을 모두 태워버렸다. 쉽게 모스크바를 차지하게 된 나폴레옹 군은 당당하게 도시로 들어왔지만 잘만한 곳과 식량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고 크게 실망했다. 계절은 초겨울을 지나고 바람은 점점 매섭게 살을 파고 들었다. 계속되는 기아와 추위에 지친 나폴레옹 군은 마침내 총퇴각을 시작했다. 쿠투조프 장군은 기다렸다는 듯이 퇴각하는 나폴레옹 군의 보급선을 끊고 대반격을 감행했다. 이미 전의를 잃은 나폴레옹 군은 도망가기에 바빴고, 러시아 군은 쉽게 대승을 거둘 수 있었다. 10만의 당당한 모습으로 모스크바에 입성한 나폴레옹군 가운데 드네프르 강을 건넌 사람은 불과 6천 명에 불과했다. 더 멀리 뛰기위한 움추림도 때로는․․․.
까마귀와 여우
한 까마귀가 자기가 훔쳐 온 고기 조각을 물고 나무 위에 앉아 있었다. 그 나무 밑을 지나던 여우가 그 까마귀를 보고 그 고기를 뺏기로 마음 먹었다. 여우는 나무 밑으로 가서 까마귀에게 "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새구나." 라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까마귀는 자기가 모든 새 중의 왕처럼 느껴졌다. 그때 여우가 "만약 네 목소리까지 훌륭하다면 너는 틀림없이 새 중의 왕일꺼야."라고 말했다. 그러자 까마귀는 자기의 목소리까지 들려 주고 싶었다. 그래서 까마귀는 입에 물고 있던 고기를 떨어뜨리며 당당하게 소리쳤다.
그때 여우는 그 고기를 물고 달아 나면서 "만일 네가 머리만 좋았더라면 정말 훌륭한 왕일텐데."라고 비웃었다.
이솝이 꾸짖는 것은 자만에 가득찬 까마귀만이 아닐 것입니다. "내가 아니면 안돼."에서 "내가 아니어도 잘돼."로 바뀌는 겸손만이 파멸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기가 막힌 일이 있습니다. "비록 나는 학문적으로는 누구누구에게 뒤지지만 겸손의 면을 말한다면 정상의 자리에 있습니다." 말하는 순간 사라지는 것이 겸손이라는 경구를 여러분은 어떻게 받아들이겠습니까?
수학으로 풀 길 없는 사랑
어진 노인이 죽음을 앞두고 아들에게 유언을 남겼다. "내가 남긴 말 열일곱 마리 가운데 큰아이 너는 1/2을 가지고 둘쨔ㅐ는 1/3을 가져라, 막내 너는 1/9을 가지도록 해라." 형제는 슬픔을 달래면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렀다. 슬픔이 어느 정도 가시자 세 아들은 자기가 갖게 될 재산을 헤아리기 시작했다. "열일곱의 1/2은면 여덟 마리 반이니 나는 아홉 마리를 가지겠어." 큰아들이 말했다. "형은 욕심이 많네. 나는 1/3이니꺄 다섯 마리 반인데 반오림해서 여섯 마리를 가질래." 둘째 아들이 말했다. "형들은 많이 가지면서도 그러는구려. 난 1/9마린데 당연히 두 마리 가져야겠지?" 이렇게 형제끼리 자기에게 유리한 계산을 하고 있는데 떤 삶이 지나다가 그 이야기를 듣고 자기 말을 한 마리 주었다. "내 말 한마리를 줄테니 싸우지 말고 나누어 가지시오." 형제는 자기 소원대로 아홉마리, 여섯마리, 두 마리를 가졌다. 그런데 나누고 나니 한 마리가 남는 거였다. 그제서야 세 형제는 자기들의 어리석음과 욕심을 깨달았다. 손쉬운 덧셈만으로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가질 수 있었을 텐데 세 형제는 왜 다투었을까. 그것은 서로의 우애보다는 이기심과 욕심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들은 숫자와 계산에 의지해서 자기들의 욕심을 채워 보려고 했다. 그러나 인간세상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들이 숫자로 딱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폭넓게 보고 아량을 가질 때 숫자로 뛰어넘는 해결책이 보이는 것이다. 충분히 되는 일인데도 서로 다투는 일이 지금 우리 주변에도 일어난다. 한 곳에서는 먹을게 남아 버리는 형편이고 한 곳에서는 없어서 굶어 죽어간다. 한 곳에서는 돈이 많아 과소비가 판치고 한 곳에서는 돈 때문에 손가락이 잘리고 있다. 숫자로는 해결될 수 있지만 사랑이 없기에 이런 비정상적인 일이 일어나는 것이리라.
두 번 당하는군!
어느 날 국회에 늦지 않기 위해 속도를 위반한 처칠 수상의 차를 한 교통경찰이 세웠습니다
그러자 운전기사가 그 경찰에게 "수상각하의 차요. 국회에 가는 길인데 시간이 늦어서 그러는거요" 라고 말했습니다 힐끔 뒷좌석을 쳐다보던 교통경찰은 "수상각하를 닮긴 닮았는데 처칠 경의 차가 교통위반을 할 리가 없소 당신은 교통위반에 거짓말까지 하는구려 면허증을 내놓으시오" 라고 했습니다 이에 깊은 감명을 받은 처칠 수상이 그날로 경시청 총감에게 ?font size="3">그 경찰을 특진시켜 주도록 명령했습니다 그러자 경시청 총감은 "경찰조직법에 그런 조항이 없어 특진시킬 수 없습니다" ?font size="3">라면서 거절했습니다 처칠은 싱긋 웃으며 중얼거렸습니다 "오늘은 경찰한테 두 번씩이나 당하는군" 정직과 원칙, 참 괜찮은 단어들이지요
바람에 날아간 오리 털
선량하게 살던 한 사람이 동네 사람의 오해로 모함을 받았습니다
선량한 사람은 나쁜 소문에 계속 큰 피해를 입자 �曹纛?한 사람을 찾아가 사실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모함을 한 사람은 잘못을 빌었습니다
"좋아, 그러면 내가 시키는 대로하게.
나와 함께 산으로 가서 오리털 베개를 뜯어 사방에 그 오리 털을 날리게"
모함을 한 사람은 그대로 했습니다
그러자 선량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이제 그 오리 털을 다 찾아오게"
"아니 사방에 날아간 오리 털을 어떻게 찾나?"
바람에 날아간 오리 털을 다 찾을 수 없듯 이미 나간 말을 찾아올 수 없다네
그러니 다시는 모함하지 말게"
우리는 남을 비판하기는 쉬워도 칭찬해주고 격려해주기는 �佇좆?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남을 거짓말로 비난하는 말은 비수 같아서 큰 상처를 줍니다
책임 있는 말을 하고 사랑의 말을 하는 사람이 그립습니다
3. 남에게 유익이 되는 생활
호주 시드니시 가까운 곳에 있는 '스트라스필드'는 시내와 가깝고 교통이 편리한 곳으로 한국사람과 유학생이 많이 모여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역 가까운 곳에는 반가운 한글로 쓰여진 �첩溶? 노래방, 커피숍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유학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이 당하는 유쾌하지 않은 일이 하나 있습니다 한국 유학생에 한해서는 1년이상 체류하지 않을 경우 집에서 국제전화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유인즉 그 동안 믿고 전화를 가설해 주었다가 �瞿?유학생들이 요금을 내지 않고 돌아가 버린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금의 나는 나의 뒤에 올 사람에게 �별?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있는가 뒤돌아봐야 합니다 내가 살다간 흔적이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주는 것은 아닌 지요? 나는 남에게 유익이 되는 생활을 하고 있는지요?
4.내가 알 게 뭐야
밀가루를 싣고 빵 공장에 가는 트럭과 시멘트를 싣고 벽돌공장에 가는 트럭이 속도로를 달리다 휴게소에 멈췄습니다 트럭 운전사는 화장실에 갔다와서 트럭을 탔는데 �琉?서로 바꿔타고 말았습니다 두 운전사는 똑같이 '알게 뭐야'라고 생각하며 차를 몰아 목적지에 갔습니다 그러니까 시멘트를 실은 트럭은 빵 공장으로 밀가루를 실은 트럭은 벽돌 공장으로 간 것이지요 공장 기술자도 '알게 뭐야'를 외치며 빵반죽에다 시멘트를 쏟아 붇고 벽돌 반죽에다 밀가루를 쏟아 부었습니다 거기서 나온 빵이 가정에 배달되고 벽돌은 집 짓는 곳에 옮겨졌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집은 무너지고 사람들은 이빨을 다친 채 배를 움켜쥐어야 했습니다
5. 잠시 쉬려던 것뿐이었는데...
지중해 해변에 살던 들오리 떼가 추운 노르웨이 쪽으로 이동을 하다가 네덜란드 상공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들오리 한 마리가 아래로 내려다보니 어떤 집 뜰에 집오리들이 옹기종기 모여 평화롭게 먹이를 먹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날갯죽지가 아파 오는 것을 느낀 들오리 한 마리는 떼를 떠나 홀로 내려앉았습니다 집오리들의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며칠을 지내게 됩니다 문득 이래서는 안 되지 하는 생각이 들어 다시 날아오르려 하니 그 동안 몸이 무거워져 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럭저럭 몇 달이 지나 가을이 되자 들오리 떼들이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으며 지중해로 날아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는 다시 한번 날아오르려 애를 썼지만 �訣┫?영영 허사였습니다 키에르케고르의 들오리 이야기는 자기의 본분을 떠나 향락의 옆길로 잠시 빠진 결과가 가져올 큰 불행을 생각하게 합니다.
6.습관
사람은 습관의 존재라고도 합니다 그만큼 사람은 자신의 몸에 밴 습관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블레이즈 파스칼은 그의 명저 [팡세]속에서 ?습관은 제2의 천성이며 제1의 천성을 파괴한다" 고 했습니다 인간은 좋은 습관보다는 나쁜 습관에 물들기가 쉬우며 그것은 마침내 타고난 좋은 천성마저 파괴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에리히 케스트너라는 독일작가와 친구가 �弱타?기차여행을 했습니다 피곤해진 친구는 의자에 기대어 곤하게 잠을 자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나 "큰일날 뻔했다. 하마터면 수면제 먹는 것을 잊어버릴 뻔했구나!" 하면서 황급히 수면제를 입에 털어 넣고는 다시 자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좋은 습관은 일생을 좌우합니다.
7.조갯살을 빼먹는 쇠고둥
꽉 닫혀 있는데도 조갯살이 없고 조개 껍질만 남은 조개를 본 일이 있습니까?
유심히 조개껍질을 살펴보면 아주 조그만 구멍이 있는데 그 구멍은 쇠고둥이라는 것이 만들어 낸 구멍입니다 쇠고둥은 조그만 송곳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데 �隔痼막?조개껍질에 구멍을 내어 조금씩 조갯살을 빨아먹는다고 합니다 우리의 풍요로운 '정신살'을 조금씩 빼내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를 파멸로 몰고 가는 잘 보이지 않는 송곳 같은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지금 내게 진행되고 있지는 않을까요?
8. 쓸모 없는 사람을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
사나운 산돼지로 인해 사람들이 많은 피해를 보게 되었습니다
숙련된 사냥꾼을 동원해 산돼지를 잡으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로 끝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한 노인이 산돼지를 잡으러 간다고 산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두 달 후 노인은 산돼지를 찾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사람들이 놀라서 어떻게 산돼지를 잡았느냐고 묻자 노인은
"산돼지가 음식을 구하는 곳을 찾아서 곡식을 계속 뿌렸더니 산돼지들은 별 노력 없이 공짜로 곡식을 먹게 된 것을 깨닫고 날마다 그 곳으로 모이게 되었지요 그래서 그 옆에 함정을 파 놓아 잡았습니다" ? 쓸모 없는 사람을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공짜 심리를 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땀을 흘려 얻은 대가야말로 참 기쁨의 소산이 아닐는지요
9. 톱밥을 켜 보셨나요?
어느 대학 졸업식에서 축하객인 한 사람이 학생들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여러분 중에 나무를 켜본 사람은 �蘭榕?보십시오" 거의 모두 손을 들었습니다
"그러면 톱밥을 켜본 사람은 있습니까?" 아무도 없었습니다
"톱밥은 이미 켜졌기 때문에 켤 수 없습니다 과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지나가 버린 일로 걱정하는 것은 톱밥을 켜려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이따금 과거의 일로 괴로워하거나 용기를 잃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톱밥을 켜려는 것처럼 아무런 의미 없는 일입니다
10.포기하지 말아야 할 때
때로 일이 잘 되지 않을 때
그대가 걷고 있는 길이 내내 언덕길일 때
자금은 얼마 없고 빚은 많을 때
웃고 싶어도 한숨 지어야 할 때
걱정이 그대를 내려 누를 때
쉬어야 한다면 쉴 것이나 포기하지는 말지니
우리 모두가 알게 되듯이
인생이란 굴곡이 있는 이상한 것이며
많은 실패가 방향을 바꾸리니
참고 견디면 이길 수 있으리
속도가 느리더라도 포기하지 말지니
또 한번 바람이 불어 성공할 수 있으리
성공이란 안에서 거절당한 실패
아주 멀어 보일 때도 가까운지 모르니
그대가 포기하지 말아야 할 때는
가장 힘들 때이리라
슬픔, 좀 무시하면 안될까요?
외아들을 잃은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여인은 슬픔으로 인해 자포자기에 빠졌고 생활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내게 왜 이런 슬픈 일이 오는가? 하필이면 왜 나인가?" 하고 이 여인은 환경과 운명을 탓했습니다 슬픔에 견디다 못한 여인이 현인을 찾아가 하소연을 했습니다 그러자 현인이 말했습니다 "네가 겨자씨 한 톨을 가져오면 네 아들을 살려주겠다 단 슬픔이 없는 집의 겨자씨라야 한다" 여인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슬픔이 없는 집의 겨자씨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슬픔이 없는 집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중에야 여인은 이렇게 말하며 슬픔을 극복했습니다 "나는 얼마나 이기적으로 슬픔을 고집해 왔던가. 슬픔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을..."
슬픔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것을 자기에게만 잇는 것으로 알고 극대화해서 절망하고 좌절하는 사람은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있는 슬픔, 좀 무시하며 살아가면 어떨까요?
12.꿈의 힘
"당신은 꿈만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어느 유명한 미국의 잡지에 실린 광고제목입니다
그리고 광고의 사진은 한 어린이가 미래를 향해 쳐다보는 가운데 우주선이 발사되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제목 밑의 글은 이렇게 씌어져 있습니다
"정신이 가리키는 곳으로 성장은 따르게 마련입니다"
라이트 형제는 비행기를 꿈꾸었고 그것을 실제로 만들었습니다
와트는 끓는 물주전자를 보다가 증기기관을 꿈꿨고 그것을 만들었습니다
로봇이 컴퓨터가 우연히 만들어졌을까요
꿈이 만들었습니다
우리의 꿈은 놀랄 만한 힘이 있습니다
꿈은 우리를 배반하지 않을 겁니다
13.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두 팔을 기계에 잘린 윌리라는 젊은이가 �퓬熾?특별히 고안된 볼링 공으로 평균점수 170점을 기록하는 기적 같은 장면을 보았습니다
"처음에 두 팔이 잘려나갔을 때 나는 절망했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좋아하는 운동을 체념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없는 낮에 볼링장을 찾아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그가 드디어 3천 명이 출전한 볼링대회에서 5등을 했다고 해설자는 흥분하여 보도합니다
그는 웃으며 마지막 소감을 말했습니다
"나는 비록 두 손과 손목은 없어졌지만
위팔과 팔꿈치가 성하다는 것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감사'라는 단어
모든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단어입니다
14.소망
캄캄한 독 속에서 쥐들은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요?
쥐를 캄캄한 독 속에 집어넣었더니
3분을 못 견디고 죽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독 속에 한 가닥 햇빛을 비췄더니
그 쥐들이 36시간을 살아 있더랍니다
캄캄한 독 속에서 3분을 견디지 못하고 죽은 쥐들은
체력이 다해 죽은 것이 아니라
절망하여 죽었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결론이었다고 합니다
삶을 꿋꿋하게 살게 하는 힘
그 힘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또 어디로부터일까요?
그것은 어디로부터인가 도울 힘이 올 것임을 믿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닐까요?
창조주는 당신이 그분을 찾을 때 당신 삶의 모든 해답에 대해 소망을 주실 것입니다
15.단점을 드러내는 용기
가수가 되기를 원했던 캐스데이리라는 아가씨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입이 너무 크고 보기 싫게 이빨이 튀어나와
그것이 항상 고민거리였습니다
그녀는 보기 흉한 이를 감추기 위해 애를 쓰며
일류 가수 흉내를 내어보았으나
여러 사람의 조롱 거리만 되었습니다
그때 어느 한 사람이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숨기려고 애쓰지 마세요. 입을 마음껏 벌리세요
청중들은 숨기지 않으려는 당신을 오히려 사랑할 것입니다
그것이 오히려 재산이 될 것입니다"
그녀는 그 충고를 받아들여 대스타가 되었습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숨기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때로는 삶을 짐스럽게 하기도 하고
자신감을 상실케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단점을 드러낼 수 있고
또 그것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면
삶은 좀더 활기차지 않을런지요.
16.사랑만이...
모든 신학이나 철학에서 사랑이란 말보다 흐뭇하고, 행복을 주며, 죽어 가는 자에게 힘을 주는 말은 없습니다.
어릴 때는 뜻모르고 사랑이란 말을 남용했으나 �뗌?들수록 사랑이란 말의 의미가 신비롭고
귀함을 깨닫게 됩니다.
한 마디의 문안, 한 번의 미소, 한 번의 악수, 몇 자의 편지,
말없는 시선의 언어, 한 번의 전화는 운명을 바꾸는 힘이 있습니다.
사랑은 악조건을 고치는 효험이 있고,
당신과 나와의 적극적 이해와 죽음을 이기는
마력이 있습니다.
사랑은 예찬이고 겸허이며, 체험이고 비밀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나는 죽더라도 당신을 위해서라면 죽음까지도 내어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만이 영원을, 사랑만이 희생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17.마음의 복숭아
화가이신 이중섭 선생께서 어느 날 앓아 누워있는 친구를 문병하러 갔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자네가 보고 싶었다네, 마침 잘 왔네"
"미안하네. 벌써 찾아오려 했었지만
빈손으로 오기도 뭣하고 해서..."
"이 사람아 그게 무슨 소린가?
자네 형편 다 아는데 빈손으로 오면 어때서"
이중섭 선생님은 들고 온 물건을 친구에게 건네주며 말했습니다
"자네 주려고 가지고 왔네.
이걸 가지고 오느라고 늦어진 걸세
복숭아를 그려 왔다네"
복숭아를 사다 줄 돈이 없어 복숭아를 그려 온 이중섭 선생님의 우정에
친구는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따뜻한 마음의 전달은 �?무엇보다 값진 선물임에 틀림없습니다.
18.허물을 덮어주세요
어느 화가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초상화를 부탁 받고
고민에 빠졌습니다
왜냐하면 대왕의 이마에는 �纂낡?있었기 때문입니다.
화가는 대왕의 상처를
그대로 화폭에 담고 싶지 않았습니다.
대왕의 자랑스러움에 손상을 입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상처를 그리지 않는다면
그 초상화는 진실한 것이 되지 못하므로
화가 자신의 신망은 여지없이 땅에 떨어질 것입니다
화가는 고민 끝에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대왕이 이마에 손을 대고 쉬고 있는 모습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타인의 상처를 보셨습니까?
그의 허물을 가려줄 방법을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는다고 합니다.
19.경청의 아름다움
데일 카네기의 [친구를 얻는 방법과 사람을 움직이는 방법]중
한 부분을 같이 나누고 싶군요
"뉴욕의 어느 모임에서 나는 저명한 식물학자를 만났다
식물학자와 대화해보기는 처음이라서
나는 그에게 흠뻑 빠져버렸다
나는 다른 손님을 개의치 않은 채 몇 시간 동안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그 후 식물학자는 다른 친구들에게 나를 가리켜
'지금까지 만난 사람 중에서 가장 말주변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말주변이 좋은 사람이라고?
그럴 리가 없다
왜냐하면 나는 알고 있는 것이 없어서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단지 진심으로 흥미를 느꼈기 때문에 관심을 갖고 들었을 뿐이다"
20.진정한 아름다움
1828년 러시아에서
아주 翩逅?어떤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아이는 자라면서
넓적한 코, 두꺼운 입술, 회색의 눈,
큰 팔다리를 비관했습니다
그래서 이 소년은
"나는 아마 못생겨서 행복하지 못할 거야"
"하나님께서 나를 아름답게만 해주신다면
내가 가진 모든 것,
미래에 가질 것도 모두 바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이 소년은 자라면서
행복은 외모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참 아름다움이라 마음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즉 사랑과 평화가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소년은 이것을 알고 �? ?글을 쓰며 앞날을 개척해 나아갔습니다
이 소년이 바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 톨스토이입니다
그의 유명한 작품
'전쟁과 평화', '부활' 등에는 이런 생각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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